와 누와 툰 윈 아웅: 문화 기억을 기록하는 예술가-연구자
최종 수정일: 8월 19일
변화하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계에서 미얀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와 누(Wah Nu)와 툰 윈 아웅(Tun Win Aung)만큼 창작자와 연구자의 역할을 두루 구현하는 협업 사례는 드물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미얀마 현대미술에서 비판적 목소리를 보여주며, 해외 관찰자들이 이 지역의 예술에 흔히 덧씌우는 단순한 정치적 서사를 넘어선다.
연구에서 시작되는 예술
두 작가는 2015년 브루클린 레일(The Brooklyn Rail) 인터뷰에서 작업의 출발점을 이렇게 설명했다. '우리 작업에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중심축이다. 과정과 반복적인 성찰 역시 핵심 요소다.' 개인의 표현을 중시한 모더니즘 선배 세대의 방식이 여전히 강한 미얀마 현대미술계에서, 연구와 성찰을 전면에 내세운 이들의 태도는 유난히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나 양곤 문화대학교(University of Culture)에서 공부했다. 와 누는 음악, 툰 윈 아웅은 조각을 전공해 1998년 나란히 학사 학위를 받았다. 서로 다른 전공은 회화와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를 자유롭게 오가는 작업의 바탕이 됐다. 그러나 이들을 작가이자 연구자로 구분 짓는 핵심은 매체의 다양성보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에 있다.
아카이브의 출발: '천 개의 흰 조각(Thousand Pieces of White)'
두 사람의 작업 세계를 이해하려면 2009년 시작한 '천 개의 흰 조각(Thousand Pieces of White)'을 먼저 봐야 한다. 동반자이자 협력자로 살아온 시간을 한 폭의 초상처럼 엮기 위해 사물과 이미지를 모으고 새로 만들었다. 공적 기록과 사적 기억, 개인의 일화와 대중문화의 차용이 포개진 이 아카이브는 평범한 일상에 숨어 있는 시적인 순간을 길어 올린다.
이 프로젝트에는 문화 연구자로서 두 사람의 방법론이 선명하게 드러난다. 개별 작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미얀마 근현대사의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분석한 뒤 새로운 이미지로 바꾼다. 권위주의 정권의 검열을 거친 옛 버마 잡지가 대표적이다. 은색과 검은색으로 지워진 페이지는 대형 이색 회화로 옮겨졌다. 한때 정보를 가리던 검열의 층이 이제는 강렬한 추상 화면을 이루는 시각 언어가 됐다.
자료를 모으고, 문화를 기록하는 법
두 사람의 연구 방식에는 미얀마의 전통적인 협업 문화가 배어 있다. 이들은 작업 과정을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서로 그것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그 주제와 관련된 데이터와 정보, 자료를 함께 더 모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뜻을 모은다. 우리가 모으는 것에는 단어와 지도, 드로잉, 이미지, 그리고 소리나 움직임의 조각까지 담긴다. 그렇게 쌓아 가는 동안 우리는 그것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분석한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다루는 이 방식에는 여러 층위의 의미가 있다. 검열과 정치적 억압 속에서 사라질 뻔한 미얀마 근현대사의 흔적을 붙잡는다. 개인의 기억과 정치적 서사가 만나는 지점을 분석하는 방법도 만든다. 더 나아가 뒤이을 작가와 연구자가 새로운 질문을 쌓아 갈 토대가 된다.

연구를 바탕으로 한 작업은 일찍부터 국제 미술계의 주목을 받았다. 두 작가는 구겐하임 미술관(뉴욕, 미국, 2013)과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일본, 2011)에서 전시했다. 싱가포르 비엔날레(2016), 제4회 광저우 트리엔날레(중국, 2011), 제6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호주 브리즈번, 2009)에도 참여했다.
이들의 국제 활동은 아세안(ASEAN)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문화 교류라는 맥락에서도 눈여겨볼 만하다. 미얀마를 피상적인 이미지로 소비하는 대신, 그 안의 복잡한 문화적 층위를 전하기 때문이다. 학문적 엄밀함과 예술적 진정성을 잃지 않으면서 해외 관객에게 미얀마를 입체적으로 보여준다.
미얀마 미술계에서 와 누와 툰 윈 아웅은 예술을 현실로 들어가는 열린 통로로 여기는 흐름을 대표한다. 여러 방법과 매체, 공간을 오가며 지금의 현실을 경험하고 탐구하고 비평한다. 이들의 작업은 미얀마 현대미술이 무엇을 다루고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지에 관한 국내외의 고정관념을 함께 흔든다. 현지 사정을 모르는 큐레이터가 기대하는 손쉬운 이국 취향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국제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얀마 작가로 자리 잡았다. 이국화에 휘둘리지 않고 국제적 접점을 넓혀 온 데 이들의 연구 기반 작업이 지닌 힘이 있다.
'더 네임(The Name)' 과 기억의 정치
'더 네임(The Name)' 연작은 아직 국제 미술 데이터베이스에 충분히 정리되지 않았다. 다만 이름과 정체성, 문화적 기억을 탐구해 온 두 사람의 작업 흐름과 맞닿아 있는 것으로 보인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개인과 정치의 접점을 살펴 온 이력을 고려하면, 사람과 장소, 기관의 이름이 변화하는 미얀마 사회에서 어떤 문화적·정치적 무게를 갖는지 묻는 작업으로 짐작할 수 있다.
두 작가의 작업은 ASEAN과 APEC 차원의 정부 간 문화 사업에도 네 가지 과제를 던진다.
문화 기록(Cultural Documentation): 문화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해석해 온 방식은 유산 보존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체계적인 문화 기록화 모델을 제시한다.
연구 기반(Research Infrastructure): 둘의 작업은 문화의 재현에 그치지 않고 문화 지식 생산에 기여할 수 있는 작가·연구자를 지원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역내 교류(Regional Dialogue): 작가들의 국제 전시 이력은 연구 기반 현대미술이 관광이나 정치적 단순화를 넘어 의미 있는 문화 교류를 촉진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활동(Sustainable Practice): 툰 윈 아웅은 늘 '스스로를 알라(Know yourself)'고 강조한다. 자기 이해와 자율적인 활동을 중시하는 태도는 외부의 인정이나 지원에만 기대지 않는 문화 발전 모델을 보여준다.
와 누와 툰 윈 아웅의 의미는 두 사람의 예술적 성취에만 있지 않다. '더 네임(The Name)' 연작을 통해 미얀마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기반 작품을 선보였고, 식민 시대의 역사 서술과 오늘의 문화 생산 방식을 함께 되묻는 방법론을 세웠다. 작가가 학문적 규범이나 정치 이념에 종속되지 않은 채 독립적인 문화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 네임(The Name)'은 연구와 미학을 결합해 지식을 만들고 나누는 새로운 길을 연다. 저항 인물 33명의 초상과 독립운동가 700명의 이름을 나란히 놓되 하나의 해석을 강요하지 않는다. 관객이 스스로 의미를 찾으며 공식 역사에 질문을 던지게 하는 비설명적 기념비다. 역사가의 연구 도구를 빌리면서도 예술적 해석의 자유를 놓치지 않은 이 방식은 현대미술이 역사적 부정의와 문화적 망각에 어떻게 응답할 수 있는지 보여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