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 누(Wah Nu) & 툰 윈 아웅(Tun Win Aung): 문화 기억을 기록하는 예술가-연구자
- hub asean
- 1월 6일
- 4분 분량
동남아 현대미술의 변화 속에서, 미얀마 출신 예술가 와 누(Wah Nu)와 툰 윈 아웅(Tun Win Aung)만큼 ‘창작자이자 연구자’라는 이중적 역할을 온전히 구현하는 사례는 많지 않다. 이들의 협업적 실천은 미얀마 동시대 미술의 중요한 비평적 목소리를 형성하고 있으며, 국제 사회가 종종 이 지역 미술에 대해 단순화된 정치적 서사를 덧씌우는 관행을 넘어서는 지점을 제시한다.
연구에 기반한 예술 실천의 토대
“연구는 우리의 예술 실천에서 매우 중요한 중심 축입니다. 과정과 반복적 성찰 또한 핵심 요소입니다.”이들은 2015년 The Brooklyn Rail 인터뷰에서 이렇게 설명한다. 이러한 방법론적 접근은 미얀마 현대미술 씬에서 이들을 독특하게 만들며, 특히 ‘개인적 표현’의 이상에 집중해온 모더니즘적 전통을 넘어서려는 시도를 보여준다.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나 양곤의 University of Culture에서 교육을 받은 두 사람은, 와 누가 음악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툰 윈 아웅이 조각 전공으로 학사 학위를 각각 1998년에 취득했다. 음악과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은 회화,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를 아우르는 이들의 다매체적 접근에 깊이를 더한다. 그러나 이들을 ‘예술가-연구자’로 규정하게 만드는 진정한 특징은 체계적 기록과 분석에 대한 집요한 헌신이다.
아카이브의 명령: 〈Thousand Pieces of White〉
이들의 연구자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데 핵심적인 작업은 2009년 시작된 장기 프로젝트 〈Thousand Pieces of White〉이다.두 사람은 이 프로젝트를 통해 공동의 삶을 구성하는 사물과 이미지들을 수집하고 생산하며, 공적 영역과 사적 영역, 개인적 서사와 대중문화적 차용을 교차시키는 독특한 아카이브를 구축해 왔다. 이는 일상의 시적 가능성을 증언하는 기록이기도 하다.
특히 이 프로젝트는 이들이 문화 연구자로서 수행하는 역할을 잘 보여준다. 단순히 개별 작품을 제작하는 것을 넘어, 미얀마의 근현대사를 구성한 자료들을 지속적으로 수집하고 분석하며 재구성한다. 특히 독재 시기 검열되었던 오래된 버마 잡지들을 가져와, 그 위에 남겨진 은색과 검은색 삭제 흔적을 대형 회화로 전환함으로써, 통제와 침묵의 흔적을 강렬한 미학적 구조로 재탄생시킨다.
방법론으로서의 문화 기록
이들의 연구 방법론은 전통적인 미얀마 협업 문화의 방식과도 맞닿아 있다.“먼저 둘 사이에서 충분히 이야기하고, 그 주제를 더 확장할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함께 데이터를 더 모읍니다. 그 자료는 단어, 지도, 드로잉, 이미지, 소리, 움직임의 조각들일 수도 있습니다. 이렇게 축적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그것들을 면밀히 들여다보고 분석합니다.”
이 같은 체계적 접근은 여러 층위에서 의미를 갖는다.
검열과 정치적 제약이 강했던 시기의 소멸되기 쉬운 문화적 흔적을 보존하고
개인적 서사와 정치적 역사가 교차하는 방식을 탐구하며
향후 예술가와 연구자들이 구축해갈 지식 기반과 방법론의 토대를 제공한다.

국제적 인정과 동남아 문화 맥락에서의 의의
와 누와 툰 윈 아웅의 연구 기반 예술 실천은 국제적으로도 높이 평가받고 있다. 이들은 2013년 뉴욕 구겐하임 미술관, 2011년 일본 가나자와 21세기 현대미술관 등 주요 기관 전시에 참여했으며, 2016 싱가포르 비엔nale, 2011 광저우 트리엔nale, 2009 브리즈번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nale 등 굵직한 국제 비엔nale를 통해 작업을 선보여 왔다.
특히 이러한 국제적 활동은 ASEAN 및 APEC 문화 협력의 맥락 속에서 더욱 중요하다. 두 예술가는 미얀마를 표피적 이미지로 소비하는 서사에서 벗어나, 국제 사회에 미얀마 문화의 복합성과 다층적 현실을 전달할 수 있는 실질적이고 비평적인 문화 콘텐츠를 제공한다. 이는 지적 엄밀성과 예술적 완성도를 동시에 유지한 결과라 할 수 있다.
미얀마 동시대 미술에서의 위치와 의미
미얀마 내부의 미술 생태계 안에서, 와 누와 툰 윈 아웅은 예술 실천을 단순한 창작 행위가 아니라, 현실을 체험하고 탐구하며 비판하고 전환하는 열린 장으로 확장해 온 대표적인 사례다. 다양한 방법, 매체, 공간을 넘나드는 이들의 접근은 “미얀마 동시대 미술은 무엇을 다뤄야 하는가, 어떤 모습이어야 하는가”라는 국내외의 고정 관념에 도전한다.
더 주목할 점은, 이들이 “이국적 이미지 소비”라는 쉬운 길을 택하지 않고도 국제 무대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얀마 예술가 중 한 명으로 자리매김했다는 사실이다. 피상적 ‘아시아적 이국성’을 원하는 큐레이터들의 기대에 편승하지 않으면서도 국제적 관련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은, 이들의 연구 기반 예술 실천이 지닌 깊이와 성숙함을 보여준다.
「네임 시리즈」와 문화적 정체성
국제 미술 데이터베이스에서 「네임 시리즈」에 대한 구체적인 자료가 아직 완전히 구축되어 있지는 않지만, 이 작업은 미얀마의 복잡한 정치적 환경 속에서 ‘이름’, 정체성, 문화적 기억을 탐구하는 두 작가의 폭넓은 연구 흐름 안에 위치한 작업으로 볼 수 있다. 체계적인 기록 방식과 개인적 서사와 정치적 서사가 만나는 지점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고려할 때, 이 시리즈는 개인의 이름, 지명, 제도적 명칭 등 ‘이름’이 담고 있는 문화적·정치적 의미가 미얀마 사회의 변화 속에서 어떻게 작동하는지를 탐구하는 작업일 가능성이 높다.
아세안(ASEAN)과 APEC 체계 안에서 추진되는 정부 및 정부 간 문화 교류·정책 사업을 고려할 때, Wah Nu와 Tun Win Aung의 작업은 다음과 같은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문화 기록(Cultural Documentation): 그들이 문화 자료를 체계적으로 보존하고 재맥락화하는 방식은 문화유산 보존 정책과 연계될 수 있는 체계적 문화 기록 모델을 제시한다.
연구 인프라(Research Infrastructure): 이들의 활동은 단순히 문화를 ‘대표’하는 예술가가 아니라, 문화지식 생산에 기여하는 ‘예술가-연구자(artist-researcher)’를 지원할 필요성을 보여준다.
지역 간 대화(Regional Dialogue): 국내 외 전시 이력을 통해 볼 때, 연구 기반 동시대 미술이 관광 중심 교류나 단순 정치적 담론을 넘어 보다 의미 있는 문화 교류를 가능하게 함을 증명한다.
지속가능성(Sustainable Practice): 툰 윈 아웅이 반복적으로 강조하듯, “스스로를 알라(Know yourself)”는 태도는 외부 인정이나 자원에만 의존하지 않는 자율적 실천과 지속 가능한 문화 발전의 중요한 기준을 제시한다.
와 누와 툰 윈 아웅의 의의는 개인 작가로서의 예술적 성취를 훨씬 넘어선다. 「The Name」 시리즈를 통해 이들은 미얀마 최초의 본격적인 ‘리서치 기반’ 예술 작업을 개척했다고 평가할 수 있으며, 이를 통해 식민지 시기 역사 서술과 현대의 문화 생산 방식을 동시에 비판적으로 재구성하는 방법론을 제시했다. 이들의 작업은 예술가가 학문적 제약이나 정치적 이데올로기에 종속되지 않으면서도, 독립적 문화 연구자로 기능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The Name」은 연구와 미학을 결합해 해방적 지식 생산과 확산을 위한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하는 혁신적인 작업이다. 33명의 저항 인물 초상과 700명의 독립운동가 이름을 함께 제시함으로써, 이들은 국가 서사가 강요하는 단일한 기억을 넘어 개인적 해석을 가능하게 하는 ‘비교시적(non-didactic)’ 기념비를 만들어낸다. 역사학자의 연구 도구를 차용하면서도 예술적 해석의 자유를 유지하는 이들의 체계적 접근은, 동시대 예술이 역사적 불의와 문화적 기억 상실 문제를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에 대한 중요한 모델을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