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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KOREA

문화예술-산업동향

와 누와 툰 윈 아웅: 문화 기억을 기록하는 예술가-연구자

  • 1월 6일
  •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6일

변화하는 동남아시아 현대미술계에서 미얀마를 기반으로 활동하는 와 누(Wah Nu)와 툰 윈 아웅(Tun Win Aung)은 특히 주목할 만한 작가들이다. 작품을 만드는 창작자이면서 동시에 연구자로 활동하는 사례가 드물기 때문이다. 두 사람의 공동 작업은 미얀마 현대미술의 비판적인 목소리를 대표하며, 해외에서 이 지역 예술에 덧띄우는 단순한 정치적 서사를 넘어선다.


연구에서 출발하는 작업

두 작가는 2015년 브루클린 레일(The Brooklyn Rail)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 작업에서 연구는 매우 중요한 중심축이다. 과정과 반복적인 성찰 역시 핵심 요소다.' 미얀마 현대미술계에는 개인의 표현을 중시하던 모더니즘 선배들의 방식을 넘어선 작가가 많지 않다. 그런 만큼 이들의 접근법은 더욱 두드러진다.

두 사람은 1970년대 중반에 태어나 양곤 문화대학교(University of Culture)에서 공부했다. 와 누는 음악을, 툰 윈 아웅은 조각을 전공해 1998년 나란히 학사 학위를 받았다. 음악과 조각이라는 서로 다른 배경은 회화와 영상, 설치, 사진, 퍼포먼스를 오가는 작업에 그대로 담겨 있다. 하지만 이들을 작가이자 연구자로 만드는 것은 무엇보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분석하는 태도다.


아카이브가 필요한 이유: '천 개의 흰 조각(Thousand Pieces of White)'

이들의 작업을 이해하려면 2009년 시작한 '천 개의 흰 조각(Thousand Pieces of White)' 프로젝트를 봐야 한다. 두 사람은 동반자이자 협력자로 함께한 삶을 그려 내기 위해 사물과 이미지를 모으고 새로 만들었다. 공적인 기록과 사적인 기억, 개인의 일화와 대중문화 요소가 함께 엮인 이 아카이브는 일상 속에 담긴 시적인 순간을 보여준다.

이 프로젝트에는 문화 연구자로서 두 사람의 태도가 잘 드러난다. 이들은 작품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미얀마 근현대사 자료를 체계적으로 모으고 분석해 새롭게 표현한다. 권위주의 정권 시절 검열당한 옛 버마 잡지를 찾아내, 한때 금지됐던 자료를 미니멀한 추상 작품으로 바꾸는 식이다. 은색과 검은색으로 지워진 페이지는 대형 회화로 다시 태어나고, 겹겹이 쌓인 검열의 흔적은 강렬한 시각 요소가 된다.


문화를 기록하는 작업 방식

이들의 연구 방식은 미얀마의 전통적인 협업 문화와 닮았다. 두 사람은 이렇게 설명한다. '우리는 서로 그것을 놓고 이야기를 나누고, 때로는 그 주제와 관련된 데이터와 정보, 자료를 함께 더 모으며 한 걸음 더 나아가기로 뜻을 모은다. 우리가 모으는 것에는 단어와 지도, 드로잉, 이미지, 그리고 소리나 움직임의 조각까지 담긴다. 그렇게 쌓아 가는 동안 우리는 그것들을 가까이 들여다보며 분석한다.'

이렇게 자료를 체계적으로 다루면 여러 효과가 생긴다. 검열과 정치적 제약이 심하던 시기에 사라질 뻔한 미얀마 근현대사의 흔적을 남길 수 있다. 개인의 이야기와 정치가 어떻게 얽히는지 분석하는 방법도 만들어진다. 나아가 뒤이어 작업할 작가와 연구자에게 기반이 된다.


와 누와 아웅의 '더 네임(The Name)'(2008~ ) 연작 중 '보 초(Bo Cho)'. 작가 제공.
와 누와 아웅의 '더 네임(The Name)'(2008~ ) 연작 중 '보 초(Bo Cho)'. 작가 제공.

이런 연구 기반 작업은 국제적으로도 인정받았다. 구겐하임 미술관(뉴욕, 미국, 2013)과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일본, 2011) 같은 주요 기관에서 전시했고, 싱가포르 비엔날레(2016), 제4회 광저우 트리엔날레(중국, 2011), 제6회 아시아 퍼시픽 트리엔날레(호주 브리즈번, 2009)에도 참여했다.

이런 국제적 활동은 아세안(ASEAN)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문화 협력 측면에서도 의미가 크다. 미얀마를 겉핥기식으로 보여주는 대신 깊이 있는 내용을 전하기 때문이다. 두 작가는 학문적 엄밀함과 예술적 진정성을 지키면서, 해외 관객에게 미얀마 문화의 복잡한 면모를 차분히 설명해 낸다.


미얀마 미술계에서 와 누와 툰 윈 아웅은 새로운 흐름을 대표한다. 예술을 지금의 현실을 다양한 방법과 매체로 경험하고 탐구하며 비평하는 일로 보는 작가들이다. 이들의 작업은 미얀마 현대미술이 무엇을 다뤄야 하는지에 대한 국내외의 고정관념에 모두 도전한다. 특히 현지 사정을 잘 모르는 큐레이터가 소비하는 피상적인 이국 취향에 타협하지 않으면서도, 국제 미술계에서 가장 주목받는 미얀마 작가가 됐다. 국제적 위상을 지키면서 이국화에 휘둘리지 않는 이 태도가 이들 작업의 깊이를 보여준다.


'더 네임(The Name)' 연작과 문화 정체성

'더 네임(The Name)' 연작은 아직 국제 미술 데이터베이스에 충분히 정리돼 있지 않다. 다만 이 연작은 미얀마의 복잡한 정치 상황 속에서 이름과 정체성, 문화적 기억을 탐구해 온 두 사람의 작업 흐름에 속하는 것으로 보인다. 자료를 체계적으로 기록하고 개인사와 정치의 접점을 살펴 온 이력을 생각하면, 이 연작은 사람이든 지명이든 기관이든 이름이 변화하는 미얀마 사회에서 어떤 문화적·정치적 의미를 갖는지 다룬 작업으로 짐작된다.


[영상: 작가 소개: 와 누와 툰 윈 아웅의 배경]

ASEAN과 APEC 차원의 정부 간 문화 사업에도 두 작가의 작업은 몇 가지 시사점을 준다.


문화 기록(Cultural Documentation): 문화 자료를 보존하고 새로운 맥락에서 해석하는 이들의 방식은 유산 보존 정책이 참고할 만한 기록 모델이 된다.

연구 기반(Research Infrastructure): 이들의 사례는 문화를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고 지식을 만들어 내는 작가·연구자를 지원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역내 교류(Regional Dialogue): 이들의 국제 전시 이력은 연구에 바탕을 둔 현대미술이 관광이나 정치적 단순화를 넘어 의미 있는 문화 교류를 이끌 수 있음을 보여준다.

지속가능한 활동(Sustainable Practice): 툰 윈 아웅은 늘 '스스로를 알라(Know yourself)'고 강조한다. 자기 이해와 자율적인 활동을 중시하는 이런 태도는, 외부의 인정이나 지원에만 기대지 않는 문화 발전 모델을 보여준다.


와 누와 툰 윈 아웅의 의미는 개인의 예술적 성취를 넘어선다. 두 사람은 '더 네임(The Name)' 연작으로 미얀마 최초의 본격적인 연구 기반 작품을 선보였고, 식민 시기 역사 서술과 오늘의 문화 생산 방식 모두에 문제를 제기하는 방법을 만들어 냈다. 작가가 학문적 틀이나 정치 이념에 얽매이지 않고 독립성을 지키면서 문화 연구자로 활동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다.


'더 네임(The Name)'은 연구와 예술을 결합해 새로운 방식으로 지식을 만들고 나눈다. 저항 인물 33명의 초상을 독립운동가 700명의 이름과 나란히 놓아, 보는 사람이 스스로 해석할 여지를 열어 두면서 공식 역사에 질문을 던진다. 특정한 교훈을 강요하지 않는 기념비인 셈이다. 역사가의 연구 방법을 쓰면서도 예술적 해석의 자유를 지키는 이 방식은, 현대미술이 역사적 부정의와 잊힌 기억을 어떻게 다룰 수 있는지 보여주는 좋은 사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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