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 위크 2025
- 1월 6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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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 수정일: 8월 6일
본 분석은 아트아시아퍼시픽(ArtAsiaPacific)에 실린 미셸 찬(Michele Chan)의 리포트를 바탕으로, 아트 바젤(Art Basel) & UBS 마켓 리포트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 연구의 데이터를 더해 작성했다. 아트아시아퍼시픽(ArtAsiaPacific)에 실린 미셸 찬(Michele Chan)의 리포트
제4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은 아시아 미술시장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달라지고 있음을 보여줬다. 이러한 변화는 역내 문화정책 담당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이 아트페어는 국제 쇼케이스에서 지역 거점으로 성격이 바뀌었는데, 이는 시장이 위축된 결과가 아니다. 무리한 세계 진출보다 탄탄한 지역 네트워크에 뿌리를 둘 때 문화 생태계가 더 오래간다는 사실을 보여주는 사례다.
숫자로 보는 지역 시장의 변화
서울의 변화는 데이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아시아 갤러리 비중은 행사 초기 35%, 2024년 48%에서 올해 64%까지 올랐다. 서구 갤러리가 발길을 돌렸기 때문만은 아니다. 마이클 워너(Michael Werner), 카르마(Karma), 세이디 콜스(Sadie Coles) 같은 기성 국제 화랑이 참가하지 않기로 한 사이, 도쿄의 오타 파인 아츠(Ota Fine Arts), 홍콩의 텐 챈서리 레인(10 Chancery Lane)과 드 사르트(de Sarthe), 베이징·상하이의 하이브 현대미술센터(Hive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욕야카르타의 코헤시 이니셔티브(kohesi Initiatives)가 그 자리를 채웠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거래 성과로도 이어졌다.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의 세폭화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Okay, then I apologize)'는 450만 달러 (약 63억원)에 팔려 프리즈 서울 역대 최고가를 기록했다.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작품은 각각 120만 달러 (약 16억 8,000만원), 180만 달러 (약 25억 2,000만원)에 거래됐다. 2020년 77만 달러 (약 10억 8,000만원)에 팔렸던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회화는 이번에 150만 달러 (약 2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한국 근대 거장 김환기의 '구름과 달'(1962)도 140만 달러 (약 19억 6,000만원)에 팔려 100만 달러 (약 14억원)를 넘겼다.

다만 개별 낙찰가보다 눈여겨볼 대목은 갤러리 규모에 따라 성과가 갈렸다는 점이다. 서울에 거점을 둔 대형 갤러리는 좋은 성적을 냈지만, 소규모 국제 갤러리의 결과는 엇갈렸다. 상하이의 린시드 갤러리(Linseed Gallery)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량푸(Liang Fu)의 작품을 대부분 팔았고, 홍콩의 키앙 말링게(Kiang Malingue)는 대만 작가 쳉첸잉(Tseng Chien Ying)을 내세운 부스를 거의 완판했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kohesi Initiatives는 판매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했고, 타이베이의 PTT 스페이스(PTT Space)는 사흘째까지 거래가 없었다고 밝혔다.
학술 연구로 확인되는 지역별 흐름
이런 흐름은 아시아 미술시장을 다룬 학술 연구와도 일치한다. 최근 발표된 아트 바젤 & UBS 아트마켓 리포트(Art Basel & UBS Art Market Report)에 따르면 2024년 전 세계 미술 판매액은 12% 줄어든 575억 달러 (약 80조 5,000억원)였다. 반면 거래 건수는 3% 늘었다. 시장이 더 낮은 가격대로 넓어지고 있다는 뜻이다. 보고서를 보면 딜러 고객의 44%가 신규 고객이었고, 미술품을 처음 산 고객 비중도 38%에 달했다.
2025년 3월 발표된 서지계량 분석은 1997년부터 2023년까지 아시아 미술 관련 논문 676편을 검토했다. 그 결과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 싱가포르국립대(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그리피스대(Griffith University),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가 주요 연구 기관으로 꼽혔다. 이런 학술 기반이 서울에서 나타나는 시장 변화를 뒷받침한다. 종합 서지계량 분석
인민대(Renmin University)와 칭화대(Tsinghua University) 문화경제학자들의 연구도 눈에 띈다. 금융과 영화, 미디어, 기술 분야에서 나온 밀레니얼·Z세대 컬렉터가 늘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현대미술과 가치 높은 고미술품을 함께 사들이며, 상당수가 해외 유학 후 귀국해 국내외 시장 관계자와 협력하면서 재단과 기관 컬렉션을 만들어 간다.
서구의 인정을 대신하는 지역 네트워크
서울 사례는 성숙한 지역 미술 생태계가 서구 시장에 기대지 않고도 자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국경을 넘는 기관 협업이 대표적이다. 앤서니 곰리(Antony Gormley)의 전시는 서울의 로팍(Ropac)과 화이트 큐브(White Cube)에서 열렸고,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와 협업한 뮤지엄 산(Museum SAN)으로도 이어졌다. 이불의 리움미술관(Leeum Museum) 회고전은 프리즈 서울 출품과 시기를 맞췄고, 두 작품 모두 아시아의 한 재단에 팔린 것으로 전해진다.
한국 거장 작가들의 작품은 수십만 달러대 중·고가 시장에서 안정적인 거래를 이어갔다. 국제갤러리(Kukje Gallery), 갤러리현대(Gallery Hyundai), PKM 갤러리(PKM Gallery), 티나 킴 갤러리(Tina Kim Gallery), 파리의 므누어(Mennour)가 이우환·박서보·하종현·윤형근·정상화·김창열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시기도 잘 맞았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에서 열린 김창열 회고전이 작품의 위상을 높였고, 이는 곧바로 거래로 이어졌다.
문화정책에 주는 시사점
서울의 데이터는 역내 문화정책 담당자에게 몇 가지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 주요 시장끼리 시기를 조율하면 서로 경쟁하기보다 보완하는 관계가 된다. 9월에 열리는 서울은 3월 홍콩 아트 바젤에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어, 한 해 내내 지역 안에서 순환이 이뤄지게 한다.
둘째, 컬렉터를 키우는 사업은 확실한 성과로 돌아온다. 서구 컬렉터의 참여가 줄어든 상황에서도 한국 컬렉터들이 국내 시장을 굳건히 떠받쳤다. 국내 문화 투자가 세계적 불확실성 속에서도 시장을 지탱할 수 있다는 뜻이다. 아츠 이코노믹스(Arts Economics)가 아시아 14개 시장의 고액 자산가 3,660여 명을 조사한 결과, 2024년 미술시장을 낙관한 응답은 91%로 2023년 77%보다 크게 올랐다.
셋째, 국경을 넘는 기관 협업은 개별 시장의 효과를 키운다. 미술관 파트너십 협정과 작가 레지던시 네트워크, 공동 소장 프로그램을 만들면, 주요 행사를 중심으로 이미 자연스럽게 이뤄지던 지역 간 교류를 제도로 자리 잡게 할 수 있다.
보다 넓은 경제적 맥락에서
서울의 경험은 시장 전체가 위축된 상황과 함께 봐야 한다. 한국 미술시장은 2022년 약 5억 7,300만 달러 (약 8,022억원)에서 현재 약 3억 5,000만 달러 (약 4,900억원)로 30% 줄었다. 4년 사이 소규모 갤러리 약 100곳이 문을 닫았고,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s),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 배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arious Small Fires) 같은 국제 갤러리도 2025년 서울 지점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탄탄한 문화 인프라와 정부 지원이 예술 활동의 동력을 지켰다. 서울은 수준 높은 기관 전시와 도시 전역의 문화 사업, 정부 지원을 바탕으로 아시아에서 가장 활발한 현대미술 현장 가운데 하나를 유지하고 있다. 연구에 기반한 사회 참여형 작업으로 송은(SONGEUN)에서 주목받은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와 아프로아시아 컬렉티브(AfroAsia Collective)의 등장도 현장의 꾸준한 혁신을 보여준다.
전망: 세계 경쟁보다 지역 협력
미셸 찬은 시장 논의가 세계 경쟁에 대한 불안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본다. 대신 지역 협업을 통해 예술과 인재, 비평을 앞세우자는 것이다. 그는 지금 시장이 '과열이 걷힌 뒤 되돌아온 익숙한 정상 상태(post-hype old normal)'로 재편되고 있다고 진단한다. 이런 국면에서 성공하려면 기존의 유력 인사와 안전한 선택에 기대기보다, 새롭게 떠오르는 작업에 적극적으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서울 사례는 지역 통합이 서구 의존 모델보다 더 오래가는 성장을 만든다는 증거다. 도쿄와 서울, 홍콩, 상하이를 중심축으로 동남아시아의 참여가 늘면서 아시아 역내 미술 서킷이 형성되고 있다. 문화정책 담당자라면 무리한 세계 진출보다 이런 지역 네트워크를 다지는 데 힘을 쏟아야 한다는 뜻이다.
아세안(ASEAN)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문화경제 사업에 서울이 주는 교훈은 분명하다. 문화 인프라에 대한 정부 투자가 아트페어 시기 조율, 기관 협업과 맞물리면 시장이 어려운 때에도 예술 활동의 활력을 지킬 수 있다는 것이다. 서울이 기록한 아시아 갤러리 비중 64%는 다른 시장들이 각자의 여건에 맞춰 참고할 만한 기준점이 된다.
앞으로 할 일은 네 가지다. 갤러리 교류 프로그램을 위한 공식 제도를 만들고, 지역 순환이 원활하도록 아트페어 일정을 조율하는 것이다. 또 신흥 시장이 서로 경쟁하기보다 보완할 수 있도록 역할을 나누고, 역량 강화 사업으로 소규모 시장을 지원해야 한다. 서울의 경험은 알맞은 정책이 뒷받침된 지역 문화 네트워크가 서구 모델을 따라 하는 것보다 창의경제에 더 튼튼한 토대가 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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