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아트 위크 2025
최종 수정일: 8월 19일
본 분석은 아트아시아퍼시픽(ArtAsiaPacific)에 실린 미셸 찬(Michele Chan)의 리포트를 중심으로, 아트 바젤(Art Basel) & UBS 마켓 리포트와 아시아개발은행(ADB) 연구, 동료 심사를 거친 학술 연구의 데이터를 종합해 작성했다.
제4회 프리즈 서울(Frieze Seoul)이 드러낸 것은 단순한 흥행의 부침이 아니다. 아시아 미술시장의 구조가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러한 변화는 역내 문화정책 담당자들에게 중요한 시사점을 던진다. 국제 작가와 갤러리를 불러 모으는 쇼케이스로 출발한 행사는 이제 아시아 각지의 시장을 잇는 거점으로 성격이 바뀌고 있다. 이는 시장의 후퇴라기보다, 무리한 세계 확장보다 역내 네트워크에 뿌리내린 문화 생태계가 더 오래갈 수 있음을 보여주는 변화다.
숫자가 말해 주는 아시아 시장의 변화
서울의 변화는 데이터에서 분명하게 드러난다. 참가 갤러리의 구성이 먼저 달라졌다. 아시아 갤러리 비중은 행사 초기 35%에서 2024년 48%, 올해 64%로 뛰었다. 단순히 서구 갤러리가 빠진 자리를 메운 결과만은 아니다. 마이클 워너(Michael Werner), 카르마(Karma), 세이디 콜스(Sadie Coles) 등 국제 화랑이 불참한 사이 도쿄의 오타 파인 아츠(Ota Fine Arts), 홍콩의 텐 챈서리 레인(10 Chancery Lane)과 드 사르트(de Sarthe), 베이징·상하이의 하이브 현대미술센터(Hive Center for Contemporary Art), 욕야카르타의 코헤시 이니셔티브(kohesi Initiatives)가 존재감을 넓혔다.
이 같은 변화는 실제 거래 성과로도 이어졌다. 마크 브래드퍼드(Mark Bradford)의 세폭화 '오케이, 덴 아이 어폴로자이즈(Okay, then I apologize)'는 450만 달러 (약 63억원)에 팔리며 프리즈 서울 역대 최고가를 새로 썼다. 조지 콘도(George Condo)의 작품 두 점은 각각 120만 달러 (약 16억 8,000만원)와 180만 달러 (약 25억 2,000만원)에 거래됐다. 2020년 77만 달러 (약 10억 8,000만원)에 팔렸던 게오르그 바젤리츠(Georg Baselitz)의 회화는 이번에 150만 달러 (약 21억원)에 새 주인을 찾았다. 김환기의 '구름과 달'(1962)도 140만 달러 (약 19억 6,000만원)에 거래돼 100만 달러 (약 14억원) 고지를 넘었다.

다만 화려한 최고가 뒤에서는 갤러리 규모에 따른 온도 차도 선명했다. 서울에 거점을 둔 대형 갤러리는 선전했지만 소규모 국제 갤러리의 성적은 엇갈렸다. 상하이 린시드 갤러리(Linseed Gallery)는 파리에서 활동하는 중국 작가 량푸(Liang Fu)의 작품을 대부분 판매했고, 홍콩 키앙 말링게(Kiang Malingue)는 대만 작가 쳉첸잉(Tseng Chien Ying)의 부스를 거의 완판했다. 반면 인도네시아의 kohesi Initiatives는 판매에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밝혔고, 타이베이 PTT 스페이스(PTT Space)는 사흘째까지 거래를 성사시키지 못했다.
학술 연구가 뒷받침한 시장 재편
이런 흐름은 아시아 미술시장을 다룬 연구 결과와도 맞닿아 있다. 최근 아트 바젤 & UBS 아트마켓 리포트(Art Basel & UBS Art Market Report)에 따르면 2024년 세계 미술품 판매액은 12% 감소한 575억 달러 (약 80조 5,000억원)였다. 그러나 거래 건수는 오히려 3% 늘었다. 거래 중심이 상대적으로 접근하기 쉬운 가격대로 넓어졌다는 뜻이다. 딜러 고객의 44%는 신규 고객이었고, 생애 처음 미술품을 산 고객도 38%에 달했다.
2025년 3월 나온 종합 서지계량 분석은 1997년부터 2023년까지 발표된 아시아 미술 관련 논문 676편을 살폈다. 중국과학원(Chinese Academy of Sciences), 싱가포르국립대(National University of Singapore), 그리피스대(Griffith University), 난양공과대학교(Nanyang Technological University)가 주요 연구 기관으로 꼽혔다. 서울에서 나타난 시장 변화의 배경에는 이처럼 축적된 지적 기반도 놓여 있다.
컬렉터의 세대교체도 진행 중이다. 인민대(Renmin University)와 칭화대(Tsinghua University) 문화경제학자들은 금융과 영화, 미디어, 기술 분야에서 밀레니얼·Z세대 컬렉터가 떠오르고 있다고 분석한다. 상당수가 해외 유학을 마치고 돌아온 이들은 현대미술과 고미술품을 함께 수집한다. 국내외 시장 관계자와 손잡고 재단이나 기관 컬렉션을 꾸리는 데도 적극적이다.
서구의 검증을 넘어선 역내 네트워크
서울의 사례는 성숙한 지역 미술 생태계가 서구 시장의 인정에 기대지 않고도 연결망을 키울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앤서니 곰리(Antony Gormley)의 전시는 서울의 로팍(Ropac)과 화이트 큐브(White Cube), 일본 건축가 안도 다다오(Tadao Ando)와 협업한 뮤지엄 산(Museum SAN)으로 이어졌다. 이불의 리움미술관(Leeum Museum) 회고전은 프리즈 서울 출품과 시기를 맞췄고, 출품작 두 점은 모두 아시아의 한 재단에 팔린 것으로 전해졌다. 전시와 기관, 시장이 국경을 넘어 맞물린 사례다.
한국 거장 작가들의 작품은 수십만 달러대 중·고가 시장에서 안정적인 거래를 이어갔다. 국제갤러리(Kukje Gallery), 갤러리현대(Gallery Hyundai), PKM 갤러리(PKM Gallery), 티나 킴 갤러리(Tina Kim Gallery), 파리의 므누어(Mennour)는 이우환·박서보·하종현·윤형근·정상화·김창열의 작품을 판매했다고 밝혔다. 국립현대미술관(MMCA) 서울의 김창열 회고전도 때마침 열렸다. 기관의 조명이 작가의 위상을 끌어올리고, 그 관심이 시장으로 이어진 셈이다.
문화정책이 읽어야 할 세 가지 신호
서울의 데이터는 역내 문화정책에 세 가지 전략적 방향을 제시한다. 첫째는 일정의 조율이다. 3월 홍콩 아트 바젤에서 9월 서울로 이어지는 흐름을 만들면 두 시장은 관객과 자본을 놓고 경쟁하기보다 서로 보완할 수 있다. 연중 이어지는 역내 순환의 기반도 마련된다.
둘째는 자국 컬렉터 기반의 힘이다. 서구 컬렉터의 참여가 줄었는데도 한국 컬렉터는 국내 시장을 든든히 받쳤다. 세계 시장이 흔들릴 때 국내 문화 투자가 완충 역할을 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아츠 이코노믹스(Arts Economics)가 아시아 14개 시장의 고액 자산가 3,660여 명을 조사한 결과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2024년 미술시장을 낙관한 응답은 91%로, 2023년 77%보다 크게 높아졌다.
셋째는 기관 협업의 제도화다. 미술관 파트너십과 작가 레지던시 네트워크, 공동 소장 프로그램을 마련하면 주요 행사를 계기로 자연스럽게 생겨나는 지역 간 교류를 일회성에 그치지 않게 할 수 있다. 개별 시장의 성과도 그만큼 커진다.
보다 넓은 경제적 맥락에서
서울의 변화는 미술시장 전반의 위축과 함께 읽어야 한다. 한국 미술시장 규모는 2022년 약 5억 7,300만 달러 (약 8,022억원)에서 현재 약 3억 5,000만 달러 (약 4,900억원)로 30% 줄었다. 4년 사이 소규모 갤러리 약 100곳이 문을 닫았고, 페레스 프로젝트(Peres Projects), 쾨니히 갤러리(König Galerie), 배리어스 스몰 파이어스(Various Small Fires)도 2025년 서울 지점을 정리했다.
그럼에도 예술 현장의 동력까지 꺼지지는 않았다. 수준 높은 기관 전시와 도시 전역의 문화 사업, 정부 지원이 버팀목이 됐다. 연구를 바탕으로 사회 참여형 작업을 선보이며 송은(SONGEUN)에서 주목받은 이끼바위쿠르르(ikkibawiKrrr)와 아프로아시아 컬렉티브(AfroAsia Collective) 같은 작가 집단도 꾸준히 등장하고 있다. 시장의 축소와 현장의 활력이 동시에 존재하는 것이 지금 서울 미술계의 얼굴이다.
전망: 세계 경쟁보다 지역 연결
미셸 찬은 미술시장을 둘러싼 논의가 세계 경쟁에 대한 조바심에서 벗어나야 한다고 말한다. 대신 지역 협업을 통해 예술과 인재, 비평을 앞세워야 한다는 주장이다. 시장이 '과열이 걷힌 뒤 되돌아온 익숙한 정상 상태(post-hype old normal)'로 재편되는 지금, 기존의 유력 인사와 안전한 선택으로 돌아가서는 새 국면을 열기 어렵다. 새롭게 떠오르는 작업을 찾아 진지하게 관계를 맺는 일이 중요하다.
서울이 보여준 방향은 서구 의존형 확장보다 역내 연결을 다지는 편이 더 오래갈 수 있다는 것이다. 도쿄와 서울, 홍콩, 상하이를 잇는 축에 동남아시아의 참여가 늘면서 아시아 안의 미술 서킷도 윤곽을 드러내고 있다. 문화정책의 초점 역시 무리한 세계 진출보다 이 연결망을 촘촘히 만드는 데 맞출 필요가 있다.
아세안(ASEAN)과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의 문화경제 사업에도 시사점은 분명하다. 문화 인프라에 대한 정부 투자가 아트페어 일정과 기관 협업에 맞물리면, 시장이 수축하는 때에도 예술 현장의 활력을 지킬 수 있다. 프리즈 서울에서 기록한 아시아 갤러리 비중 64%는 다른 시장이 각자의 문화·경제적 조건에 맞춰 참고할 만한 기준이다.
다음 단계는 연결을 제도로 굳히는 일이다. 갤러리 교류 프로그램을 만들고, 역내 이동이 이어지도록 아트페어 일정을 조율해야 한다. 신흥 시장끼리는 경쟁보다 보완에 무게를 두고, 역량 강화 사업으로 작은 시장을 받칠 필요가 있다. 서울의 경험이 말해 주는 결론은 간명하다. 적절한 정책이 뒷받침한 지역 문화 네트워크가 서구 모델의 모방보다 창의경제에 더 튼튼한 토대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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