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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KOREA

문화예술-산업동향

아트 아카이브: 필리핀 현대 시각·공연예술을 조명하다(2017)

1월 6일
3분 분량

최종 수정일: 8월 21일



2017년 11월 일본국제교류기금 마닐라(Japan Foundation, Manila)가 발간한 '아트 아카이브 01(ART ARCHIVE 01)'은 필리핀의 현대 시각예술과 공연예술을 폭넓게 다룬 연구서다. 현역 작가와 공연가, 미술 평론가, 큐레이터, 기자, 학자들이 글을 실어 필리핀 문화계의 다양한 목소리를 한데 모았다.


패트리샤 투망(Patricia Tumang)이 이끈 편집 기획은 필리핀 예술 활동과 운동이 지역적·세계적 영향 사이의 지속적인 긴장 속에서 형성되어 온 복잡한 양상을 살피려는 문제의식에서 출발했다. 필리핀 작가들이 오늘날의 정치·사회경제적 환경 속에서 어떻게 작업하고 이에 대응하는지, 또 독립 작가 운영 공간과 기관 지원 전시·프로그램에서 어떤 예술적 표현이 나타나는지를 함께 살펴본다. 필자들은 예술가와 공연자가 서구의 '동시대성(the contemporary)' 기준에 어떻게 대응하고 도전하는지, 서로 긴밀히 연결되는 국제 미술시장의 요구 속에서 어떤 길을 찾는지도 묻는다.


구조와 주제적 틀

이 책은 서로 독립적이면서도 유기적으로 연결된 세 부분으로 나뉜다. 역사적 토대에서 동시대의 양상까지 필리핀 미술의 흐름을 따라가는 구성이다.


1부 '역사 되짚기(Retracing Histories)'는 1970년대의 정치적 격동기부터 반세기가 넘는 필리핀 미술사를 짚는다. 첫 글은 링고 부노안(Ringo Bunoan)이 쓴 '공간과 역사를 발굴하기: 숍 식스의 사례(Excavating Spaces and Histories: The Case of Shop 6)'다. 1974년 검열당한 그룹전을 계기로 필리핀 작가 여섯 명이 '숍 식스(Shop 6)'라는 임시 대안 공간을 만든 과정을 상세히 복원했다. 당시 마닐라 미술계를 기록한 조이 다이릿(Joy Dayrit)의 미발표 원고를 바탕으로, 필리핀 개념미술의 초기 모습과 그것이 마르코스 독재와 부딪친 지점을 날카롭게 그려 낸다.


리사 이토타팡(Lisa Ito-Tapang)은 '필리핀의 시각예술과 행동주의: 새로운 불만의 계절에 관한 노트(Visual Arts and Activism in the Philippines: Notes on a New Season of Discontent)'를 썼다. 사회적 저항의 메시지를 담은 예술 운동인 사회적 사실주의(Social Realism)의 흐름을 정리한 글이다. 마르코스 시기의 정치적 혼란에 대응해 등장한 효시(effigy)와 벽화, 전시, 퍼포먼스 아트, 정치 만평까지 두루 다룬다. 마유미 히라노(Mayumi Hirano)의 '흐름 위의 다리: 필리핀의 작가 운영 축제(Bridge Over the Current: Artist-Run Festivals in the Philippines)'는 1980~90년대 필리핀 작가들이 직접 예술 축제를 열기 시작한 과정을 다룬다. 특히 오늘날 미술·공연 축제의 선례가 된 바기오 아츠 페스티벌(Baguio Arts Festival)과 비사야 제도 시각예술 전시·회의(Visayas Islands Visual Arts Exhibition and Conference)를 자세히 소개한다.


2부 '움직임과 수행성(Movement & Performativity)'은 필리핀의 현대무용과 퍼포먼스, 연극이 서로 영향을 주고받는 양상을 조명한다. 전통 형식이 고유한 색채를 지키면서 동시대의 맥락에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해 왔는지를 주요하게 다룬다. 시르 안릴 피네다 티아트코(Sir Anril Pineda Tiatco)는 '필리핀 연극에서 동시대성 이해하기(Understanding the Contemporary in Philippine Theater)'에서 두 가지를 살핀다. 서구 극작 전통이 필리핀 연극의 '동시대성' 기준에 여전히 영향을 미치는 이유, 그리고 토착 공연 전통이 현대 연극 속에서 어떻게 이어지고 변해 왔는지다.


리나 앙헬라 코르푸스(Rina Angela Corpus)의 '필리핀 현대무용의 지형 그리기(Mapping Out Contemporary Dance in the Philippines)'는 전통 무용단의 형성에서 오늘날 독립 무용단과 그룹으로 이어지는 필리핀 현대무용의 흐름을 추적한다. 서로 다른 춤 양식을 결합하고 멀티미디어 예술과 영화, 문학, 정치, 사회 담론 등 여러 분야와 접점을 넓히며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는 과정을 보여준다.


3부 '현대 시각예술 다시 정의하기(Redefining Contemporary Visual Art)'는 오늘의 세계 미술시장에서 '동시대적'이라는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다시 묻는다. 어윈 크루즈(Irwin Cruz)의 '필터: 최근 필리핀 현대 사진에 관한 시각(Filters: A View of Recent Philippine Contemporary Photography)'은 마닐라 미술계에서 사진이 빠르게 부상한 배경을 살핀다. 디지털 기술과 소셜미디어가 사진 작업과 감상 방식을 어떻게 바꿨는지 분석한 글이다.


주얼 추아운수(Jewel Chuaunsu)의 '세계 속의 필리핀 현대 작가들(Global Filipino Contemporary Artists)'은 해외에서 활동하는 필리핀 작가 여섯 명을 소개한다. 고국과 떨어져 있는 것이 오히려 작업에서 국가적·문화적 정체성을 강하게 드러내는 계기가 됐다는 점을 짚는다. 마지막은 더피 후파나 오센탈(Duffie Hufana Osental)의 '세부의 현대 시각예술(Contemporary Visual Art in Cebu)'이다. 이 글은 의도적으로 마닐라를 벗어나 세부(Cebu)를 조명한다. 현대 세부아노(Cebuano) 작가들이 대안적인 플랫폼과 미학을 받아들이며 전통 양식에 도전하는 현장을 보여준다.


비평적 분석과 오늘날의 의미

출간 시점도 필리핀 현대미술사에서 특히 중요하다. 필리핀이 50년 만에 베니스 비엔날레(Venice Biennale)에 복귀했고 미술시장은 전례 없는 호황을 맞았다. 수록 글은 스페인 식민 지배와 미국 점령, 제2차 세계대전기 일본의 침략, 마르코스 독재 등 여러 격변이 필리핀의 예술 표현과 문화적 정체성에 남긴 흔적을 짚는다.


아트 아카이브는 필리핀 작가들이 전통 형식과 동시대의 혁신 사이를 오가며 진정성과 문화적 정체성, 예술적 정당성에 관한 질문과 꾸준히 씨름해 온 과정을 보여준다. 또한 마닐라 중심의 미술계와 지역 예술 공동체, 상업성이 있는 미술과 실험적 작업, 제도적 지원과 독립적 표현 사이의 긴장을 함께 드러낸다.

일본국제교류기금이 이 책을 디지털 형식으로 펴낸 것은 오늘날 문화 교류와 지식 확산의 방식을 반영한다. 전 세계 독자가 필리핀 미술 담론에 접근할 수 있게 하는 동시에 세계 각국의 작가와 교육자, 큐레이터, 박물관 전문가, 갤러리, 공연예술 공간, 문화 기관에게 필리핀의 미학 담론을 폭넓게 전달하고 동시대적 대화를 촉진하려는 접근성을 높인 조치라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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