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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KOREA

문화예술-산업동향

동남아시아 창의산업: 2025~2026년 영화·애니메이션·게임·스트리밍을 재편하는 6대 트렌드

8월 28일
6분 분량

동남아시아의 창의산업은 더 이상 할리우드나 넷플릭스(Netflix), 아시아의 대형 콘텐츠 수출국들이 이끄는 이야기의 유망한 곁가지가 아니다. 이제는 동남아시아 자체가 하나의 독립적인 이야기로 부상하고 있다.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스트리밍 전반에서 아세안(ASEAN)의 콘텐츠 산업은 현지 작품이 박스오피스 정상을 차지하고, 지역 스튜디오가 세계적으로 인정받는 지식재산(IP)을 구축하며, 약 7억 명에 달하는 젊고 모바일 중심적인 관객층이 콘텐츠의 제작과 수익화 방식을 재편하는 단계에 들어섰다.

1. 현지 콘텐츠의 약진: 동남아 영화 박스오피스의 '황금기'

가장 큰 변화는 ASEAN 주요 시장에서 자국 영화가 이제 해외 블록버스터를 앞서고 있다는 점이다. 태국에서는 2024년 사상 처음으로 자국 영화가 해외 수입작보다 높은 매출을 올리며 전체 박스오피스 매출의 약 54%를 차지했다. 이는 역대 최고치로, 세계적으로 수출되는 태국의 공포 영화가 흥행을 크게 이끌었다. 2025년에는 이러한 기록적인 기세가 다소 꺾였지만 자국 영화의 우위는 이어졌고, 태국 정부는 이러한 흐름을 지속하기 위해 전용 영화기금을 출범시켰다. 인도네시아에서는 1,000만 관객 돌파가 흥행작의 새로운 기준으로 자리 잡았으며, 자국 영화가 할리우드 프랜차이즈를 앞서는 사례도 꾸준히 나오고 있다.

중요한 점은 이러한 흐름이 프리미엄 시장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는 것이다.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태국은 모두 2025년 역대 최고 수준의 아이맥스(IMAX) 실적을 기록했다. 이는 관객들이 점점 더 자신들의 이야기를 가장 큰 스크린에서 보고 싶어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업계가 주목해야 할 핵심은 분명하다. ASEAN 관객은 단순히 글로벌 콘텐츠를 소비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이들은 적극적으로 현지 서사를 선택하고 있으며, 이를 위해 프리미엄 가격을 지불할 의향도 있다.



2. 조회수에서 가치로: 'IP 우선' 전략의 부상

박스오피스 수치 이면에는 더 깊은 전략적 전환이 자리 잡고 있다. 일회성 흥행작을 좇는 '유동성(flow)'에서 벗어나, 오래 지속되고 소유할 수 있는 지식재산(IP)이라는 '고정 자산(stock)'을 구축하는 방향으로 무게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것이다.

가장 분명한 신호는 인도네시아 애니메이션의 돌풍을 일으킨 <점보(Jumbo)>에서 찾을 수 있다. 비시네마 스튜디오(Visinema Studios)가 420명 이상의 인도네시아 아티스트로 구성된 팀과 5년에 걸쳐 제작한 이 작품은 인도네시아에서 2,470만 달러 이상(4,020억 루피아) (약 345억 8,000만 원)의 매출을 올리고 40개국 이상에서 상영되며 역대 가장 높은 흥행 수익을 거둔 동남아 애니메이션 영화가 되었다. 더욱 놀라운 것은 1,000만 명이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KKN di Desa Penari>를 제치고 역대 최고 흥행 인도네시아 영화에 올랐다는 점이다. 인도네시아 내 전체 흥행 순위에서는 <어벤져스: 엔드게임>에 이어 2위다. 그러나 이보다 더 주목할 만한 것은 스튜디오가 업계 시장에 던진 메시지였다. 소모적인 일회성 프로젝트에서 벗어나, 수십 년에 걸쳐 창작 생태계를 지탱할 '에버그린(evergreen) IP'를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게임 산업에서도 같은 전환이 나타나고 있다. 베트남 스튜디오들은 광고 수익에 의존하는 하이퍼캐주얼 게임에서 벗어나 IP 중심의 인앱 결제 비즈니스 모델로 전환하고 있다. 이는 한 세대 전 한국이 생산량에서의 우위를 지속 가능한 가치 중심 산업으로 전환한 경로와 직접적으로 비교되기도 한다.

창작자와 투자자, 정책 당국 모두에게 이제 중요한 질문은 더 이상 "어떻게 흥행작을 만들 것인가?"가 아니다. "그 흥행작의 기반이 되는 IP를 어떻게 소유하고 성장시킬 것인가?"가 새로운 화두가 되고 있다.



3. 조용히 세계 1위 모바일 게임 수출국으로 도약한 베트남

동남아 게임 시장은 2025년 기준 70억 달러 (약 9조 8,000억 원)를 넘어선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성장하는 시장 중 하나다. 시장은 모바일 게임이 주도하며, 전체 게임 이용의 약 70~73%를 차지한다.

단연 돋보이는 국가는 베트남이다. 2024년 한 해에만 전 세계에서 약 67억 건의 모바일 게임 다운로드를 달성한 베트남은 중국마저 제치고 세계 최대 모바일 게임 수출국으로 올라섰다. 현재 베트남은 전 세계 시뮬레이션, 퍼즐, 아케이드 장르 다운로드의 약 11%를 차지하고 있으며, 게임 수출 매출은 2025년 전년 대비 36% 이상 급증할 것으로 전망된다.


흥미로운 점은 이처럼 폭발적인 수출 호황이 갈수록 엄격해지는 국내 규제 환경과 뚜렷한 대조를 이룬다는 것이다. 2024년 말 시행된 새로운 국가 라이선스 체계인 시행령 제147호(Decree 147)는 엄격한 이용자 신원 확인을 의무화하고, 플랫폼에 불법 콘텐츠를 24시간 이내에 삭제하도록 요구한다. 규제 강도는 높지만, 업계에서는 이러한 제도 정비가 베트남 디지털 경제가 더 이상 개발자들의 '무법천지(wild west)'로 남아 있는 것이 아니라 빠르게 제도화되고 있음을 보여주는 강력한 신호로 평가한다. 이는 해외 투자자들에게도 긍정적으로 작용하고 있다.

한편 인도네시아는 여전히 이용자 수 기준 역내 최대 내수 게임 시장이며, 싱가포르는 규모 이상의 영향력을 발휘하는 게임 개발 및 e스포츠 허브로 자리 잡고 있다.


4. 절대 강자 없는 다중 플랫폼 스트리밍 시장

단일 플랫폼이 지배하는 서구 시장과 달리 동남아 스트리밍 시장은 말 그대로 파편화되어 있으며, 이러한 구조가 콘텐츠 유통 전반을 좌우한다.

넷플릭스의 동남아 성장세는 가파르다. 플랫폼 내 동남아 콘텐츠 시청량은 2023년과 2024년 사이 약 50% 증가했으며, 100편이 넘는 동남아 작품이 글로벌 톱 10에 진입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서와 달리 넷플릭스가 시장을 지배하지는 않는다. 태국의 경우 넷플릭스의 스트리밍 시청 시간 점유율은 약 26%로, 현지 플랫폼인 트루아이디(TrueID)의 22%, 중국 플랫폼 위티비(WeTV)의 17%가 바짝 뒤를 쫓고 있다.

콘텐츠 투자에서도 이러한 변화가 뚜렷하게 나타난다. 아시아 주요 7개 시장의 콘텐츠 투자액은 2024년 161억 달러 (약 22조 5,400억 원)에 달했으며, 스트리밍 플랫폼의 투자액이 사상 처음으로 기존 유료 TV를 넘어섰다.

콘텐츠 권리자에게 주는 실질적인 시사점은 분명하다. 동남아시아의 유통 전략은 하나의 글로벌 플랫폼에 의존할 수 없다. 대부분의 시장에서 역내 및 중국계 스트리밍 플랫폼이 상당한 점유율을 확보하고 있으며, 현지어 콘텐츠는 역내 국경을 넘어 유통될 수 있기 때문이다.


5. AI의 대두와 역풍: 자동화, 반발, 그리고 ‘진정성 프리미엄’의 부상

생성형 AI가 역내 전반의 창작 제작 방식을 재편하는 가운데, 2025~2026년에는 이를 조정하려는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다.

AI 도구는 각본, 스토리보드, VFX, 현지화, 마케팅 콘텐츠 제작을 가속화하고 있으며, 역내의 기술 기업들도 AI를 인간의 창의성을 보완하는 도구로 적극 홍보하고 있다. 그러나 조악한 콘텐츠를 대량 생산하는 'AI 슬롭(AI slop)'에 대한 반발 또한 거세지고 있다. 업계 데이터에 따르면 현재 동남아 소비자의 82%는 정서적으로 교감할 수 있는 브랜드를 선호하며, 마케터의 74%는 인간 창작자가 만드는 스토리텔링에 대한 투자를 늘릴 계획이다.

창작 노동자에게 미치는 파장도 상당하다. ASEAN 노동력의 절반 이상인 약 1억 6,400만 명이 생성형 AI로 인한 어떤 형태의 직무 변화를 겪을 것으로 예상된다. 유네스코(UNESCO)는 학습 데이터와 저작권을 둘러싼 주요 글로벌 소송이 계속되는 가운데, 2028년까지 AI로 인해 음악 분야 창작자의 수입이 약 24%, 시청각 분야 창작자의 수입이 21% 감소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이 과정에서 떠오르는 핵심 흐름은 '진정성 프리미엄(authenticity premium)'이다. 합성 콘텐츠가 모든 채널을 가득 채울수록, 인간이 만들었다는 사실을 검증할 수 있고 문화적 특수성이 살아 있는 스토리텔링의 가치는 오히려 높아지고 있다.


 6. T-팝과 P-팝의 부상: 독자적 대중음악 IP 구축

영화, 게임, 스트리밍이 산업의 주요 화두로 떠오르는 가운데, 동남아시아 음악 산업도 태국의 T-팝(T-Pop)과 필리핀의 P-팝(P-Pop)의 빠른 성장에 힘입어 독자적인 변화를 거듭하고 있다. 해외 히트곡을 단순히 소비하는 데서 벗어나, 현지 기획사들은 K-팝이 개척한 체계적인 아이돌 육성 및 제작 시스템을 도입하는 한편, 여기에 현지 언어와 고유한 문화적 서사를 결합하고 있다. 필리핀의 SB19와 BINI, 태국의 4EVE와 PROXIE 같은 그룹은 역내를 넘어 열성적인 팬덤을 확보하며 높은 수출 가능성을 지닌 음악 중심 IP를 만들어낼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창의경제 전체로 시야를 넓히면 이는 중요한 변화를 의미한다. 동남아시아는 더 이상 글로벌 아티스트들이 수익성 높은 투어를 위해 들르는 시장에 그치지 않고, 그 자체로 존재감 넘치는 대중음악 인큐베이터로 부상하고 있다.


 

7. 공동제작 호황과 깊어지는 한국의 참여

동남아 콘텐츠는 점점 국가별 경계를 넘어 국경 간 협업을 통해 제작되는 추세다. 최근에는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의 공동제작 작품들이 주요 국제 영화제에서 잇따라 첫선을 보였으며, 부산국제영화제(BIFF)와 욕야카르타 영화제(JAFF) 등의 마켓을 중심으로 범지역 프로젝트도 활발하게 확대되고 있다.

특히 한국 기업들은 역내 콘텐츠 가치사슬에 깊숙이 참여하고 있다. CJ ENM이 제작한 작품들은 3년 연속 베트남 박스오피스 톱 10에 이름을 올렸으며, 한국 스튜디오들은 태국과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역내 전반에서 콘텐츠 리메이크와 공동제작을 꾸준히 이어가고 있다.

주목할 점은 이러한 동남아시아의 부상이 보다 성숙한 시장의 내부 압박과 맞물려 나타나고 있다는 사실이다. 2025년 한국의 전체 극장 매출은 전년 대비 12.4% 감소한 1조 470억 원을 기록했고, 관객 수도 13.8% 줄었으며 한국 영화 매출은 특히 큰 폭으로 감소했다. 감소세는 상반기에 가장 두드러져 극장 매출이 전년의 약 3분의 2 수준에 그쳤지만, 정부의 티켓 지원 캠페인이 시행되면서 하반기에는 반등했다. 핵심 인재와 투자금 또한 계속해서 스트리밍과 TV로 이동하고 있다. 성숙한 시장이 재편되는 가운데, 동남아시아는 아시아 콘텐츠 산업에서 가장 역동적인 성장 엔진 가운데 하나로 부상하고 있다.



창의경제 측면의 전략적 함의

이 일곱 가지 트렌드를 종합하면, 동남아시아가 소비 시장에서 생산 강국으로 전환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거대한 젊은 소비층, 높아지는 현지 콘텐츠 수요, 커지는 IP 확보 의지, 그리고 확대되는 역내 협력이라는 기반이 하나둘 갖춰지고 있다. 동시에 해결해야 할 과제도 분명하다. 국가별로 편차가 큰 제작비 지원을 포함한 지속 가능한 자금 조달, 일관된 유통망, AI 활용이 확대되는 산업 환경에 맞춘 인력 재교육, 그리고 IP와 콘텐츠 진정성을 위한 보다 명확한 제도적 기반이 필요하다.

ASEAN의 창의경제에서 사업을 구축하는 스튜디오, 투자자, 플랫폼, 공공기관 모두에게 2025~2026년은 중요한 전환점이다. 동남아시아가 더 이상 '잠재력'이라는 관점에서만 평가되는 지역이 아니라, 실제 산출물과 성과로 평가되기 시작하는 시점이기 때문이다.

자주 묻는 질문(FAQ)

동남아에서 콘텐츠 산업이 가장 강한 나라는?

인도네시아(박스오피스 규모, 이용자 수 기준 최대 게임 시장), 태국(공포·초자연 콘텐츠 강국, 2024년 자국 영화 수익 수입작 역전), 베트남(세계 1위 모바일 게임 수출국), 싱가포르(개발·e스포츠·금융 거점).


동남아 최고 흥행 애니메이션은?

인도네시아의 <점보>(2025년, 비시네마 스튜디오). 관객 1,000만 명 돌파, 자국 박스오피스 2,470만 달러 이상(4,020억 루피아) (약 345억 8,000만 원)으로 역대 최고 흥행 인도네시아 영화 1위 (전체 2위), 40개국 이상 상영.


스트리밍이 극장을 대체하고 있나?

반드시 그렇다고 보기는 어렵다. ASEAN에서는 극장과 스트리밍이 서로의 시장을 잠식하기보다는 대체로 함께 성장해 왔다. 관객들은 두 플랫폼 모두에서 현지 콘텐츠를 시청하고 있으며, 서구 시장에서 넷플릭스가 차지하는 것과 같은 압도적인 지위를 가진 단일 스트리밍 플랫폼도 찾아볼 수 없다.


AI가 동남아 창의산업에 미치는 영향은?

제작을 앞당기는 동시에 저품질 AI 생성물인 ‘AI 슬롭’에 대한 반발을 불러일으킨다. 1억 6,000만 명 이상의 노동자가 직무 변화를 맞이하며, 사람이 직접 만든 스토리텔링의 '진정성 프리미엄'이 커지고 있다.

출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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