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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KOREA

문화예술-산업동향

누구를 위한 발판인가: EU-아세안(ASEAN) 기업협의회의 '책임 있는 AI' 청사진 읽기

8월 28일
6분 분량

『ASEAN의 책임 있는 AI 생태계 구축』과 거버넌스 구조를 균형 있게 들여다보다


2026년 1월, EU-ASEAN 기업협의회(EU-ABC)는 『ASEAN의 책임 있는 AI 생태계 구축: 안전하고 포용적이며 혁신에 준비된 미래를 향해(Building ASEAN's Responsible AI Ecosystem: Towards a Safe, Inclusive and Innovation-Ready Future)』를 발간했다. 보고서가 나온 시점도 주목할 만하다. ASEAN 디지털경제 프레임워크 협정(DEFA)이 타결을 앞두고 있고, ASEAN 디지털 마스터플랜 2025가 개정 단계에 접어들었으며, ASEAN은 지난 2년간 일련의 연성법 체계를 마련해 왔다. 2024년의 『ASEAN AI 거버넌스·윤리 가이드』, 2025년 발표된 생성형 AI 관련 확장 가이드, 그리고 최근 출범을 선언한 ASEAN AI 안전 네트워크(AI SAFE)가 대표적인 사례다.



먼저 짚어둘 점이 있다. 이 보고서는 중립적인 정책 조사가 아니다. EU-ABC는 스스로를 지역 내 유럽 기업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단체로 규정하며, 유럽의 투자와 교역을 촉진할 수 있도록 정책 및 규제 환경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주요 사명으로 삼고 있다. 그렇다고 해서 이 문서의 가치가 훼손되는 것은 아니다. 업계 단체는 규제 환경 안에서 실제로 활동해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규제 지형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경우가 많다. 다만 이 보고서는 ‘현황을 빠짐없이 조사한 자료’가 아니라 하나의 입장을 담은 문서로 읽어야 한다. 이 보고서의 권고안은 다음과 같은 특정한 질문에 답한다. 서로 다른 10개국의 규제 체계에 걸쳐 사업을 전개하는 기업들이 역내 책임 있는 AI를 어떻게 이해하기 쉽고, 상호운용 가능하며, 마찰이 적은 형태로 적용할 수 있도록 만들 것인가?


EU-ABC: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기업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2014년 공식 출범한 이후 주요 유럽 다국적 기업과 지역 상공회의소를 대표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EU-ABC: 싱가포르에 본부를 두고 있으며, 동남아시아에서 유럽 기업을 대변하는 대표적인 단체다. 2014년 공식 출범한 이후 주요 유럽 다국적 기업과 지역 상공회의소를 대표하는 단체로 발전했다.

AI 스택(AI Stack): 분석을 위한 틀


이 보고서의 논리를 구성하는 핵심 프레임워크는 바로 'AI 스택'이다. 보고서는 AI 정책을 서로 밀접하게 맞물린 4개 계층으로 구조화한다.

1계층(최하단): 데이터 및 인프라

2계층: 모델 및 알고리즘 개발

3계층: 응용 프로그램 및 도입

4계층(최상단): 거버넌스 및 조율

각 계층은 역내 기존 이니셔티브를 분류하는 서술적 틀인 동시에 정책 권고안을 묶어 제시하는 처방적 틀로 활용된다.


이는 충분히 설득력 있는 구조다. 진정한 분석적 가치는 여기서 제시하는 역할 분담에 있다. 역내 기구는 공통의 기준선과 상호 인정 체계를 마련하고, 개별 국가 정부는 규제 샌드박스, 표준화 기구, 인센티브 등을 통해 이를 이행한다. 싱가포르처럼 AI Verify와 같은 실무 검증 체계를 운영하는 국가가 있는 한편, 여전히 로드맵을 수립하는 단계에 머물러 있는 회원국도 있는 ASEAN의 불균등한 현실을 고려하면 위와 같은 역할 분리는 실질적으로 유용하다. 이를 통해 보고서는 어느 회원국도 원하지 않는 '규제 조화'를 요구하는 함정을 피하고, 대신 보다 낮고 달성 가능한 기준인 ‘상호운용성(interoperability)’을 제시할 수 있다. 명칭을 걷어내고 보면, AI 스택은 책임 있는 AI가 규제만으로 구현되는 것이 아니라 신뢰할 수 있는 데이터와 숙련된 인력, 책임 있는 감독 체계가 함께 작동할 때 가능하다는 점을 보여준다. 합리적이고 잘 구성된 논점이다.


거버넌스 층위에 대한 정밀 진단

스택의 최상단에 위치한 거버넌스 층위에서 보고서는 가장 솔직한 모습을 보인다. 바로 이 부분을 면밀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보고서에서는 해결하기 어려운 문제가 있다는 점을 솔직하게 인정한다. 대부분의 회원국에서 지식재산권(IP) 소유권, 법적 책임, 학습 데이터를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에 관한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았으며, 현지의 평가 역량이 제한적이어서 기업이 AI 산출물의 정확성, 윤리성, 문화적 적절성을 검증하기 어렵다는 점을 지적한다. ASEAN의 언어적·문화적 다양성이 이러한 문제와 직결된다는 사실 또한 드러낸다. 원칙만으로 모든 문제가 해결된다는 식의 가정도 하지 않는다.


해결책은 몇 가지 핵심 수단으로 모인다. AI SAFE를 기반으로 한 자발적 ASEAN AI 신뢰 마크, 조달 및 실사 체크리스트 형태의 공급자 보증 프레임워크, ISO/IEC 42001 및 NIST AI 위험 관리 프레임워크와 같은 국제 기준과의 정합성, 그리고 참여 의사가 있는 국가 간 양자·다자 상호 인정 시범사업이다. 그 밑바탕에 깔린 논리는 기업들이 이미 규범 준수의 측면에서 차용한 '패스포팅(passporting)'이다. 국경과 상관없이 단 한 번의 평가 승인으로 중복 감사를 피하는 방식이다. 규제 설계의 관점에서 마찰을 줄이는 것을 목표로 한다는 점에서 일관되고 현실적이다. 역내에서 집행할 수 없는 의무를 요구하기보다 '자발적'과 '참여 의사가 있는'이라는 표현을 거듭 강조하는 점도 의외로 솔직하다.


다만 세 가지 측면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첫째, 여기서 '자발적'이라는 단어가 지나치게 강조된다. 따라서 현재의 의미보다 그것이 향후 어떻게 변해갈지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 자발적 신뢰 마크가 사실상의 조달 요건으로 자리 잡고, 나아가 시장 진입의 실질적인 조건이 되는 것은 이미 여러 차례 반복되어 온 경로다. 보고서 역시 이를 숨기고 있지는 않다. 상호 인정과 조달을 바로 그 메커니즘으로 제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독자는 '자발적'을 안정된 최종 상태가 아니라 출발점으로 이해해야 한다. 진짜 중요한 질문은 그 다음에 있다. 누가 감사인을 인증하며, 누구의 기준에 따라 평가하는가? 실제 권력이 어디에 자리 잡는지는 바로 이 지점에서 결정되지만, 보고서는 그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둘째, 보고서의 제안은 신뢰를 인증 가능한 대상으로 만든다. 신뢰 마크가 신뢰를 ‘부여’하는 것이 되는 순간, 보증 프레임워크의 평가에 따라 신뢰의 존재 여부가 결정된다. 여기에서 말하는 프레임워크란 대부분 역외에서 개발된 표준에 기반을 두고 있다. 성숙한 국제 기준을 차용하는 것 자체에 문제가 있는 것은 아니다. 다만 '신뢰'라는 신호의 근간이 외부에서 정의된 지표에 놓여 있고, 이를 현지에서 인정하는 방식에는 짚어볼 지점이 있다. 문화 분야의 평가 쟁점을 다뤄 봤다면 익숙한 방식일 것이다. 평가 도구는 신뢰를 있는 그대로 기록하기보다 특정한 형태의 신뢰를 ‘생산’하고, 감사 가능한 형태로 만든 뒤 그 형태를 신뢰 그 자체인 것처럼 제시한다.

셋째, 보고서에서 문화와 언어는 대부분 위험 요소로 등장한다. 이는 문화 정책 측면에서 특히 중요한 문제다. 보고서는 문화적·언어적 적절성을 거버넌스상의 우려 사항으로 지적하고, 공급자 체크리스트에도 '문화/IP 고려사항'을 포함한다. 그러나 다양성은 무엇인가를 ‘검증하기 위한 대상’으로만 나타난다. 현지 자연어 처리 인력 부족을 비롯한 자원 부족의 원인이자, 규범 준수의 한 요소이며, 관리해야 할 변수로만 취급하는 것이다. 그 자체로 고유한 권리를 주장하는 문화유산, 언어 데이터, 창작물의 집합으로는 다뤄지지 않는다. 해결되지 않은 IP 및 학습 데이터 문제에 대한 최종 처방도 조달 체크리스트다. 이는 기업의 법적 책임을 관리하는 도구이지, 자국의 언어와 문화적 형태를 학습하는 시스템에 사용된 데이터에 대해 창작자의 권리나 공동체의 권리를 확립하는 도구가 아니다.


AI 스택이 빠뜨린 구조적 공백

사례 연구를 하나로 모아 살펴보면 이 보고서가 무엇을 다루고, 또 무엇을 다루지 않는지가 선명하게 드러난다. 사례 연구에는 SAP, 코카콜라(Coca-Cola), DHL 서플라이 체인(DHL Supply Chain), DHL 익스프레스(DHL Express), 로레알(L'Oréal) 등의 기업이 등장한다. 주요 키워드는 기업 혁신, 스마트 제조, 물류 분류, 화장품 배합이다. 이 보고서는 산업 및 상업 분야의 AI 도입을 다루며, 그 점을 숨기지 않는다.

그러나 이는 제조, 금융, 의료, 교육과 같은 분야에 AI가 어떻게 도입되는지를 다루는 '응용·도입(Applications & Adoption)' 층위와 창의 부문, 공공 유산 기관, 그리고 문화 활동이 의존하는 공익 데이터의 연관성을 거의 다루지 않는다. 학습 데이터 주권, 공동의 공공 자산으로서의 문화유산 데이터, 생성형 AI 시스템의 학습 자료를 제공하는 예술가와 아카이브의 권리 문제는 모두 논의의 범위에서 빠져 있다. 창의경제가 소프트파워와 국경 간 교류를 이끄는 중요한 동력인 ASEAN에서 이는 나중에 각주로 보완하면 될 사소한 누락이 아니라, 분명한 구조적 공백이다.


그럼에도 이 보고서가 중요한 이유

위와 같은 한계 때문에 보고서의 가치를 전면 부정할 필요는 없다. 오히려 보고서의 논점을 적극적으로 파고들어야 한다.

위 보고서가 산업계를 향해 거듭 강조하는 가장 강력한 조언은, 다른 누군가의 활용 사례를 중심으로 만들어진 체계를 나중에 그대로 물려받기보다 아직 그 언어와 개념이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에서부터 일찍 참여하라는 것이다. 이 조언은 문화 기관과 창의 부문 단체, 그리고 유산과 언어 데이터를 관리하는 공공 기관에도 적어도 똑같이 적용된다. ASEAN에서 '책임 있는 AI'가 대기업의 조달 인증 체크리스트로 전락하게 된다면, 이는 신뢰의 기준을 정의하는 자리에 문화와 기억, 그리고 기록의 정치학을 고민하는 사람들이 함께하지 않았기 때문일 것이다.

현재 제안된 신뢰 마크, 보증 포럼, 상호 인정 시범사업은 여전히 연성법 단계에 있고, 자발적이며, 아직 형성되어 가는 과정에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지금이야말로 이들이 과연 누구의 이해관계를 장부에 기록하고 있는지 물어야 할 때다.



자주 묻는 질문(FAQ)

EU-ABC의 책임 있는 AI 보고서란?

2026년 1월 발표된 『ASEAN의 책임 있는 AI 생태계 구축(Building ASEAN's Responsible AI Ecosystem)』은 역내 유럽 기업들을 대변하는 EU-ASEAN 기업협의회(EU-ABC)가 작성한 정책 보고서다. ASEAN과 회원국들이 책임 있는 AI에 관한 공동의 원칙을 실제로 작동하는 거버넌스 체계로 전환하기 위해 단기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AI 스택(AI Stack)' 프레임워크란?

AI 정책을 데이터 및 인프라(Data & Infrastructure), 모델 및 알고리즘 개발(Model & Algorithm Development), 응용 및 도입(Applications & Adoption), 거버넌스 및 조율(Governance & Coordination)이라는 서로 긴밀하게 연결된 4개 계층으로 구성하는 프레임워크다. 이 '스택'을 활용해 기존 이니셔티브를 분류하고, 역내 기구는 공통 기준선을 마련하고 국가 정부는 실제 이행을 담당하는 역할 분담을 제시한다.


ASEAN AI 신뢰 마크(Trust Mark) 제안이란?

ASEAN AI 안전 네트워크(AI SAFE)를 기반으로 구축되는 자발적 역내 인증 체계다. AI 시스템이 일정 수준의 투명성과 문서화 기준을 충족한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을 목표로 하며, ISO/IEC 42001 및 NIST AI 위험 관리 프레임워크와 같은 국제 기준을 참고해 회원국 간 상호 인정을 지원한다.


이 보고서는 창의·문화 부문에 어떤 의미가 있는가?

이 보고서는 지식재산권(IP), 콘텐츠 진정성, 문화적·언어적 적절성을 주로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및 위험 관리 문제로 다룬다. 따라서 창의경제의 관점에서는 창작자의 권리, 학습 데이터의 출처, 문화유산 데이터 등을 둘러싼 중요한 문제들이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채 남아 있다. 이는 관련 프레임워크가 아직 만들어지고 있는 단계에서 문화 기관과 창의 부문 단체가 논의에 참여해야 할 이유이기도 하다.


  • EU-ASEAN Business Council, Building ASEAN's Responsible AI Ecosystem: Towards a Safe, Inclusive and Innovation-Ready Future (January 2026). EU-ABC — https://www.eu-asean.eu


추천 영상: 책임 있는 AI에 대한 이해 확장

조직 내에서 견고한 AI 거버넌스 체계를 구축하는 방법을 이해하는 데 유용한 입문 자료다. 짧은 가이드를 통해 내부 업무 프로세스 표준화, 위험 관리, 기업 차원의 투명성 확보를 위한 실질적인 방안을 제시한다.
책임 있는 AI가 경쟁력인 이유(Why Responsible AI is Your Competitive Edge): 루먼 차우두리(Rumman Chowdhury) 박사는 윤리적 AI 실천이 단순한 규제 준수를 넘어서는 이유를 설명한다. 신뢰할 수 있고 포용적인 기술 생태계를 구축하는 것이 글로벌 시장에서 강력한 전략적 경쟁력이 될 수 있음을 강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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