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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SEAN-KOREA

문화예술-산업동향

ASEAN 창의경제에 대한 지역 인식 조사

  • 6월 22일
  • 4분 분량

서울은 물론 싱가포르, 자카르타, 마닐라의 정책 입안자들은 수년 동안 아세안 창의경제에 대해 논의해 왔다. 그들은 전략 계획을 수립하고, 축제 프로그램에 자금을 지원했으며, 이를 중심으로 정부 간 협력 체계를 구축해 왔다. 그러나 그들이 간과했던 건 그 창의경제 안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창의경제를 어떻게 이해하고 있는지에 대한 체계적인 근거였다.

이러한 공백은 이제 부분적으로 메워졌다. 2025년 10월, 영국문화원은 ASEAN 창조경제에 관한 최초의 지역 인식 조사(Regional Perception Poll on the ASEAN Creative Economy)를 발표했다. 이 조사는 아세안 10개 회원국과 동티모르의 총 4,117명을 대상으로 실시되었으며, 일반 대중과 창의경제 분야 종사자들, 즉 창의경제 참여자(Creative Players)를 모두 포함했다.

이 조사는 영국-아세안 사절단, 영국문화원, 아세안 사무국이 공동으로 의뢰했으며, 아세안 문화예술 고위공무원회의(Senior Officials Responsible for Culture and Arts, SOMCA)의 지원 아래 추진되었다. 또한 아세안-영국 창조경제 발전 프로그램(ASEAN-UK Advancing Creative Economy Programme)의 일환으로 개발되었으며, 연구기관 iDNA Solutions와 지역 내 여러 기여자들이 함께 수행했다.



익숙함과 성장의 역설


이번 보고서에서 구조적으로 가장 흥미로운 발견은 보고서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의 역설이다. 아세안 국민의 상당수가 창의경제가 성장하고 있다고는 믿지만, 거의 절반이 창의경제가 정확하게 무엇인지는 모르고 있다는 점이다.

구체적인 수치를 보면, 일반 응답자의 60%는 아세안 지역의 창의경제가 상당한 성장을 경험하고 있다고 응답했다. 그러나 '창의경제'라는 용어 자체에 대해 자신을 '어느 정도 익숙하다'고 평가한 사람은 47%에 불과했다. 다시 말해, 아세안 시민 약 10명 가운데 4명은 자신이 완전히 정의하지 못하는 어떤 것의 성장을 믿고 있는 셈이다.


이를 반드시 모순이라고 볼 필요는 없다. 오히려 사람들이 일상에서 경험하는 현실과 이를 설명하는 개념적 언어 사이의 간극을 반영하는 결과일 수 있다. 많은 동남아시아 사람들은 K-드라마를 시청하고, 지역 음악 축제에 참석하며, 공예품을 구매하고, SNS에서 독립 디자이너들을 팔로우한다. 그러나 이러한 활동들을 '창의경제'라는 하나의 개념 아래 묶어 인식하지는 않는다. 창의경제는 그들의 삶 속에 존재하지만, 그것을 명명하는 정책적 틀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영국문화원 보고서는 이를 "창의경제에 대한 홍보 부족으로 인해 충분한 정보가 전달되지 못한 결과"라고 설명한다. 그러나 이 결과가 함의하는 바는 더 날카로울 수도 있다. 현재 '창의경제'라는 개념이 본래 일반 대중을 향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정책 입안자들, 산업 협회, 그리고 학계 내부에서 주로 통용되고 있다는 것이다.


아세안 창의경제 프로그램을 설계하는 기관이라면, 이 결과를 기반으로 사업 기획 전략을 재점검 할 필요가 있다. 만약 목표로 하는 대상 집단의 절반만이 당신이 말하는 내용을 이해하고 있다면, 프로그램 이름을 '창의경제 지원'이라고 짓는 것은 효과적인 대중 인지도 제고 전략이 아니다. 업계 내부에서 사용하는 전문 용어를 일반 대중도 이해할 것이라고 착각하는 일종의 전문가식 약어에 불과하다.

창의경제 참여들이 실제로 겪는 어려움


이번 조사는 일반 대중과 창의경제 참여자를 구분하여 분석했다. 창의경제 참여자란 창조기업, 관련 협회, 정부기관, 학술기관 등 창의경제 분야에서 활동하는 개인들을 의미한다. 여러 측면에서 볼 때, 이들의 응답 결과는 일반 대중의 조사 결과보다 오히려 더 우려스럽다. 지역 차원에서 창의경제가 직면한 가장 큰 과제가 무엇인지 묻는 질문에 대해, 창의경제 참여자의 50%는 '지역 차원의 조정과 협력의 부족'을 가장 큰 장애물로 지목했다. 이는 매우 주목할 만한 수치다. 이 결과는 아세안 창의산업 현장에서 실제로 일하는 전문가들이 인식하는 가장 중요한 장벽이 자금 부족도 아니고, 기술이나 역량의 부족도 아니며, 인프라 부족도 아니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들이 가장 심각하게 느끼는 문제는 지역 차원의 지원 생태계 자체가 파편화되어 있다는 점이다.


자금 조달에 관한 결과 역시 이러한 문제를 더욱 뚜렷하게 보여준다. 창의경제 참여자의 25%는 국내외 시장에 진출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금융 접근성의 부족을 꼽았다. 또한 68%는 전반적으로 시장 접근 자체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응답했다. 자금 조달의 어려움은 아세안만의 특수한 문제가 아니다. 이는 전 세계 창의산업이 공통적으로 안고 있는 구조적인 과제이다. 그러나 68%라는 시장 접근의 어려움은 특히 높은 수치다. 이는 창의경제 종사자들이 작품이나 콘텐츠를 만들어낼 수는 있지만, 그 결과물을 실제 관객이나 소비자에게 전달하는 경로, 특히 국경을 넘어 다른 국가의 시장으로 연결되는 경로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음을 시사한다.


높은 비용 문제는 일반 대중과 전문가 집단 모두의 응답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났다. 일반 응답자의 53%는 아세안의 창의상품과 서비스를 소비하는 데 있어 가장 큰 장애물로 '높은 비용'을 꼽았다. 이 결과는 단순히 가격이 비싸다는 의미만은 아니다. 이는 제작비, 비효율적인 유통, 그리고 국가 간 소득 수준의 큰 차이가 존재하는 시장에서 문화상품이 갖는 구조적인 경제성을 함께 반영하는 결과라고 볼 수 있다. 흥미로운 점은 보고서가 인도네시아, 말레이시아, 필리핀에서는 이러한 가격 장벽이 어느 정도 극복되고 있다고 분석한 것이다. 그 이유는 지역 문화에 깊이 뿌리내린 작품, 즉 문화적 특색이 뚜렷한 콘텐츠에 대한 강한 수요 때문이다. 이는 진정성과 지역 문화와의 공명이, 지역성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 일반적인 범지역 프로그램보다 소비자들에게 가격을 정당화하는 강력한 기준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시사한다.


아무도 이야기하고 싶어 하지 않는 IP 문제


이번 보고서에서 상대적으로 덜 주목받았지만 중요한 발견 가운데 하나는 지식재산에 관한 내용이다. 조사 대상 11개국 가운데 캄보디아, 인도네시아, 라오스, 말레이시아, 미얀마, 필리핀, 태국 등 7개국은 IP 지원에 대해 '중립적인 입장'을 보였다. 여기서 IP 지원이란 지식재산 등록, 가치평가, 사업화, 법률 서비스 등을 모두 포함한다.

이러한 중립적 태도는 매우 의미 있는 결과다. 창의산업에서 IP는 문화적 창작물이 지속적인 경제적 가치를 창출하도록 만드는 핵심적인 메커니즘이다. 그럼에도 IP 지원에 대해 사람들이 특별히 긍정적이지도 부정적이지도 않은 태도를 보인다는 것은, 일반적으로 두 가지 가능성을 시사한다. 첫째, 현재 존재하는 IP 제도가 현장의 창작자들에게는 충분히 관련성이 있다고 인식되지 않을 수 있다. 둘째, 창의경제 참여자들 스스로도 아직 IP를 자신의 전문적 활동의 핵심 요소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

보고서는 이를 정책적 개입이 필요한 영역으로 규정한다. 2025년 5월 열린 제46차 아세안 정상회의에서 아세안 정상들은 ASEAN 창조경제 지속가능성 프레임워크(ASEAN Creative Economy Sustainability Framework)를 채택한 바가 있다. 이 프레임워크에서 IP 관리를 핵심 전략 우선순위 가운데 하나로 포함하고 있음을 고려했을 때, 공식 정책이 지향하는 목표와 현장에서 일하는 전문가들의 실제 인식 사이에는 상당한 간극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숫자로 기록된다는 것의 가치


사실 이번 조사의 가장 큰 기여점은 실제로 수치를 통해 측정했다는 사실 그 자체이다. 그동안 아세안 창의경제에 관한 논의는 오랫동안 경제성장 전망, 일화적 사례, 그리고 정책적 기대의 조합 위에서 이루어져 왔다. 물론 어떤 설문조사도 완벽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이번처럼 아세안 전역을 대상으로 실시된 체계적인 조사는, 현장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실제로 무엇을 인식하고, 무엇을 경험하며, 무엇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지를 바탕으로 논의를 현실에 닿게 만들었다.

아세안 일반 대중의 43%가 창의경제가 경제성장과 지역사회 복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친다고 생각한다는 결과는 분명 고무적이다. 마찬가지로 54%가 지역의 지혜와 문화를 창조적 생산의 핵심 요소로 인식한다는 결과 역시 긍정적이다.

이러한 수치들은 창의경제 분야에 대해 정책과 산업계가 아직 충분히 활용하지 못한 상당한 수준의 대중적 지지가 존재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그러나 더 실질적으로 정책에 활용할 수 있는 결과는 오히려 그 '간극' 에 있다. 창조경제에 대한 낮은 인지도, 시장 접근성의 부족, 지역 차원의 협력 부족, 지식재산에 대한 이해 부족. 이러한 문제들은 한국-아세안 협력 사업을 포함한 아세안 창의경제 프로그램들이 실제로 활동하고 있는 현실의 지형(actual terrain)을 보여준다.

그리고 그 현실은, 흔히 사용되는 '활기찬 창조경제', '한류가 이끄는 아세안 협력' 이라는 표현이 전달하는 이미지보다 훨씬 더 복잡하며, 국가별 편차 또한 훨씬 크다. 현실 그대로의 지형(actual terrain)을 기반으로 일하는 것은, 이상적으로 그려진 지형(idealized terrain)을 전제로 일하는 것보다 훨씬 어렵다. 그러나 장기적으로 보았을 때, 실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실제 지형을 고려한 창의경제 사업 운영만이 결국 효과를 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ASEAN 창의경제에 대한 지역 인식 조사(Regional Perception Poll on the ASEAN Creative Economy)』(British Council, 2025)는 영국문화원 홈페이지에서 Creative Commons Attribution-NonCommercial 4.0 Licence에 따라 무료로 저장할 수 있다. 또한 「ASEAN 창의경제 지속가능성 프레임워크(ASEAN Creative Economy Sustainability Framework)」는 2025년 5월 개최된 제46차 ASEAN 정상회의에서 채택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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