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네시아 바틱(Batik) 경제 해부: 유네스코 문화유산에서 글로벌 지식재산(IP) 자산으로(1)
최종 수정일: 8월 21일
서론
2009년 유네스코(UNESCO)가 인도네시아 바틱(Batik)을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한 일은 국제적 영예를 넘어 새로운 논의를 촉발했다. 살아 있는 공예 전통이자 국가 정체성의 표지이며 점차 지식재산권(IP) 분쟁의 대상이 된 바틱을 어떻게 보호하고 상업화하며 산업 규모로 키울 것인가라는 수십 년의 과제였다.
인도네시아의 대응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지만, 바틱의 중요성은 그 독특함보다는 오히려 전형적인 사례라는 데 있다. 아세안(ASEAN) 각국 정부는 공통적으로 같은 구조적 문제에 직면해 있다. 역사에 뿌리를 둔 공동의 창의적 전통을, 문화 거버넌스가 따라잡기도 전에 빠르게 변화하는 글로벌 시장에서 어떻게 방어 가능한 경제 자산으로 전환할 것인가가 그것이다.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장인들의 생계는 물론, 국가의 소프트파워와 아세안 창의경제를 둘러싼 새로운 제도적 구조에도 실질적인 영향을 미친다. 바틱은 바로 이 논쟁이 가장 선명하고 공개적으로 펼쳐진 대표적인 사례다.
1. 경제 자산으로서의 바틱: 기회의 크기
바틱은 소규모 수공예품을 넘어 하나의 산업을 형성하고 있다. 유네스코 등재 뒤 국제 수요가 늘면서 수출액은 2010년 약 2,200만 달러에서 2014년 3억 4,000만 달러로 증가했다. 바틱 산업은 숙련된 장인이 전통 밀랍 방염 기법(canting)으로 제작해 높은 가격에 판매하는 '수제 바틱(batik tulis)'부터 대중 시장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는 '날염 바틱(batik cap)'과 기계 인쇄 제품까지 폭넓은 가치사슬을 이룬다.
이는 인도네시아 창조 경제 전반의 급성장과 궤를 같이한다. 2024년 인도네시아 창조 경제는 GDP에 1조 5,000억 루피아 이상을 기여하고 2,650만 명의 고용을 창출할 것으로 전망되며, 그 중심에 바틱을 앞세운 패션 산업이 자리 잡고 있다. 특히 전체 IP 출원 건수가 2015년 약 7만 5,000건에서 2024년 약 34만 건으로 연평균 18.5%씩 빠르게 증가한 것은 브랜드와 혁신 자산을 보호하려는 정책적 관심을 뚜렷하게 보여준다.[¹]
인도네시아의 IP 제도 전반도 빠르게 정비되고 있다. 저작권 출원은 2015년 6,000건 미만에서 2024년 17만 8,000건 이상으로 늘었고, 상표 출원은 약 13만 6,000건으로 거의 두 배가 됐다. 이 기간 전체 IP 출원의 86.76%가 중소기업(SME)에서 나왔고, 패션과 식음료가 주요 부문이었다. 2025년 상반기에만 전국에서 15만 2,115건이 출원돼 전년 동기보다 20% 늘었다. 2025년 인도네시아 'IP Xpose' 행사를 찾은 세계지식재산기구(WIPO) 사무총장은 이렇게 평가했다. 예로부터 '누산타라(Nusantara), 문화와 유산, 혁신의 땅'으로 불려 온 인도네시아가 문화 자산을 보호받는 상업적 가치로 바꿀 제도 기반을 부지런히 세우고 있다는 것이다.[²] 바틱은 이 전환을 가장 선명하게 보여주는 사례이자, 제도의 한계가 가장 분명히 드러나는 사례다.
눈여겨볼 제도적 지표도 있다. 인도네시아 지식재산총국(DGIP)은 해마다 특정 IP 범주를 중점 주제로 정해 왔다. 지리적 표시(2018년, 2024년 재지정), 산업디자인(2019년), 특허(2021년), 저작권(2022년), 상표(2023년) 순이다. 2024년 지리적 표시를 다시 중점 주제로 삼은 것은 바틱처럼 원산지에 기반한 유산 상품의 보호가 아직 끝나지 않은 정책 과제임을 보여 준다.[³]
2. IP 구조: 무엇이 바틱을 지키고, 무엇이 지키지 못하는가
바틱을 둘러싼 지식재산권(IP) 보호 체계는 겉보기보다 복잡하며, 이러한 복잡성은 실제 경제적 결과로 이어진다. 바틱을 충분히 보호할 수 있는 단일한 제도는 존재하지 않는다. 대신 여러 보호 제도가 서로 중첩된 형태로 적용되고 있으며, 각각 한계를 지닌다.
인도네시아에서도 대부분의 국가와 마찬가지로 저작권은 자동으로 발생하지만, 이를 바틱에 적용하는 것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저작권 보호를 받으려면 특정 바틱 디자인이 충분한 독창성을 갖추고 있음을 입증해야 한다. 그러나 여러 세대에 걸쳐 공동으로 만들어져 온 문양의 경우 정확한 창작자를 특정하기 어려우며, 저작권이 여러 가문이나 공방에 분산되어 있는 경우도 많다. 솔로(Solo) 지방정부가 여러 전통 문양을 저작권으로 등록한 사례가 있지만, 이러한 접근 방식은 또 다른 문제를 낳는다. 특정 문양에 대한 권리를 누가 보유하는지를 두고 생산자 간, 때로는 가문 간 분쟁이 발생할 수 있으며, 국경을 넘어 이루어지는 복제를 막는 데에는 효과가 없다.[⁴]
산업디자인 등록은 대량 생산되는 패션 제품에 적용된 바틱 문양을 보호할 수 있는 보다 강력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바틱 문양이 상업적 제조 과정을 통해 의류, 휴대전화 케이스 또는 액세서리 등에 적용되는 경우, 제품의 시각적 외관과 형태를 보호하는 산업디자인법이 저작권보다 집행 가능한 보호 수단을 제공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측면의 바틱 지식재산권 보호는 아직 충분히 활용되지 않고 있다.[⁵]
보다 넓은 차원에서 보면, 2009년 유네스코(UNESCO) 지정 자체도 일종의 소프트 보호 장치로 기능한다. 이는 바틱이라는 문화적 범주에 있어 인도네시아를 국제적인 준거점으로 확립하기 때문이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욕야카르타 그랜드 수공예·바틱 하우스(Yogyakarta Grand Handicraft and Batik House)가 운영하는 ‘바틱 마크(Batik-mark)’ 인증 제도도 도입했다. 이 제도는 제품이 진정한 인도네시아 바틱임을 인증하고, 국내 및 수출 시장에서 원산지에 대한 신뢰를 형성하는 데 목적이 있다. 바틱 마크 라벨 자체도 인도네시아 저작권청에 등록되어 있으며, 이는 인증 제도 자체에도 보호 지위를 부여하려는 시도다.[⁴]
다만 바틱 마크 인증은 인도네시아 국내에서만 효력을 갖는다. 해외에서 지식재산권을 확보하려면 개별 생산자가 목표 시장마다 디자인 특허, 저작권 등록, 상표권 확보 절차를 별도로 밟아야 한다. 바틱 산업의 다수를 차지하는 중소 규모 공방은 높은 비용과 복잡한 절차 때문에 수출 대상국마다 디자인 특허나 저작권, 상표를 개별적으로 출원하기 어렵다. 이 때문에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섬유 제조업체가 인도네시아 바틱 문양을 반복적으로 복제해도 원작자가 활용할 수 있는 법적 구제 수단은 제한적이다.
바틱이 공예품에서 브랜드로 옮겨 가면서 상표의 중요성도 커졌다. 인도네시아의 2016년 상표법 및 지리적 표시법(2016년 법률 제20호)은 단체표장 등록을 허용한다. 지역 바틱 생산자 협회가 쓸 수 있는 제도지만 활용은 여전히 저조하다. 헌법재판소는 2024년 불사용 취소 기간을 3년에서 5년으로 늘렸다(결정 제144/PUU-XXI/2023호). 경제적 충격을 겪는 중소기업을 돕기 위한 조치였다.[⁶]
지리적 표시(GI)는 바틱 보호에 가장 유망하지만 아직 충분히 발전하지 못했다. GI는 제품명을 특정 지역과 연결해, 개별 등록 없이도 집단적으로 보호한다. 2024년 기준 인도네시아는 138개의 지리적 표시를 관리하며 상당수가 문화·농업 유산 상품이다. 정부는 2024년 'GI Goes to Marketplace'와 'GI Drafting Camp', 등록 GI 모니터링 강화 같은 사업으로 GI 진흥에 힘을 실었다. 다만 바틱은 생산지가 한 곳이 아니어서 GI 적용이 복잡하다. 주요 산지인 욕야카르타(Yogyakarta), 솔로(Solo), 페칼롱안(Pekalongan), 치르본(Cirebon), 마두라(Madura)가 저마다 다른 양식을 지녔다. 통합 GI 등록은 어렵지만, 유럽의 스카치 위스키와 아이리시 위스키처럼 지역별 GI를 따로 두는 방식은 가능하다.[⁴]
2024년 10월 인도네시아는 법률 제65호를 제정해 2016년 특허법을 개정했다. 국제 기준에 맞춰 출원 절차를 간소화하고 라이선스 조항을 강화한 것이다. 국가안보와 관련한 강제실시 지침을 명확히 하고 특허권자의 보고 의무도 강화했다. 이와 별도로 2014년 저작권법 개정도 국가입법프로그램에 따라 추진 중이며, 디지털·기술 환경에서의 보호 확대에 초점을 둔다. 이런 개혁은 제도 현대화의 일부이지만, 바틱 생산자가 해외 시장에서 겪는 권리 보호 공백은 아직 메우지 못했다.[⁷]
인도네시아는 2024년과 2025년 스페셜 301 보고서(Special 301 Report)에서 미국 무역대표부(USTR)의 우선감시대상국 목록(Priority Watch List)에 계속 올랐다. 2025년 보고서는 위조품의 현지 제조가 늘고 판매가 온라인 플랫폼으로 대거 옮겨 갔다고 지적했다. 두 흐름 모두 바틱 부문과 직결된다.[⁸]
3. 전통과 상업화 사이의 긴장
인도네시아 바틱 경제는 아세안 유산 기반 창조 산업이 공통으로 마주한 구조적 딜레마를 보여준다. 가장 높은 경제적 부가가치와 진정성을 지닌 '수제 바틱(batik tulis)'은 생산 규모를 늘리기 가장 어렵고, 모방과 표절에 취약하며, 고령화한 장인들에게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는 구조적 문제다.
수제 바틱은 가격 경쟁에서 날염 제품에 밀린다. 바틱 뚤리스 한 점을 완성하는 데 몇 주에서 몇 달이 걸리지만, 비슷해 보이는 대량 날염 제품은 훨씬 싼값에 살 수 있다. 천연 염료와 양질의 왁스 같은 원자재 공급도 불안정하다. 장인 세대 교체 역시 오래된 과제다. 전통 공방은 낮은 공예 노동 임금과 다른 일자리 사이에서 선택해야 하는 젊은 세대를 견습생으로 끌어들이기 어렵다. 역설적으로 바틱에 프리미엄 가치를 부여하고 UNESCO 인정을 이끌며 모방품과 구별하는 힘은 바로 바틱 뚤리스의 장인적 완성도와 문화적 깊이, 검증된 수공예성에서 나온다.
수작업 바틱 한 점을 완성하는 데는 수개월이 걸리지만, 외관이 비슷한 기계식 날염 제품은 시장에서 더 낮은 가격에 판매된다. 이는 문화경제학에서 일컫는 '생산성 지체(productivity lag)'의 전형이다. 공예품의 특성상 기계화를 거부해야만 고유의 가치가 유지되기에, 생산성은 멈춰있고 비용만 치솟는 것이다. 지식재산권 제도가 일정 부분 방파제 역할을 할 순 있어도, 이 근본적인 '경제적 비대칭성' 자체를 소거할 수는 없다.
이 문제에는 IP 법이 다루지 못하는 정치적 측면도 있다. 국제 무대가 열릴 때마다 되살아나는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바틱 기원 논쟁이 그 예다. 문화유산 주장이 ASEAN에서 어떻게 지정학적으로 작동하는지 보여준다. 두 나라 모두 수백 년의 전통을 지닌 바틱을 만든다. 인도네시아의 UNESCO 등재도 논쟁이 끝난 역사적 결론이라기보다 특정 시점의 국제 문화외교가 낳은 결과다. 이 논쟁은 문화유산 문제가 단순한 IP 사안이 아님을 일깨운다. 국가 정체성과 외교 관계, 기원을 둘러싼 정치가 얽혀 있어 법으로만 풀 수 없다.[⁴]
이 문제는 바틱만의 일이 아니다. 유산 기반 생산이 상업적 규모와 국경을 넘는 복제를 만나는 곳이라면 ASEAN의 수공예·패션 산업 어디서나 나타난다. 인도네시아 정부는 창업 지원과 장인의 디지털 플랫폼 진출, 지리적 표시 등록을 추진해 왔다. DGIP의 상표 사업인 OVOB(한 마을 한 브랜드, One Village, One Brand) 프로그램도 지역 상품의 단체 브랜드 등록을 지원해 IP를 지역사회의 실질적 경제 가치로 연결하려 한다.[³]
참고 문헌
[1] AFFA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Why Indonesia Is the Next Big Market for Foreign Brands — and How IP Can Protect Your Growth." August 2025. https://affa.co.id/global/2025/08/20/why-indonesia-is-the-next-big-market-for-foreign-brands-and-how-ip-can-protect-your-growth/
[2] China Intellectual Property Lawyers Network / IP Express. "Indonesia Pledges to Speed Up Digital IP Transformation at WIPO Assembly." 2025. https://www.ciplawyer.com/articles/157124.html
[3] AFFA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Not Just Batik: Why Industrial Design Is the Hidden Gem of IP in Indonesia." June 2025. https://affa.co.id/global/2025/06/23/not-just-batik-why-industrial-design-is-the-hidden-gem-of-ip-in-indonesia/
[4] IP Komodo. "Indonesian Batik and IP Protection." Blog. http://ipkomododragon.blogspot.com/2011/10/indonesian-batik-and-ip-protection.html
[5] AFFA Intellectual Property Rights. "Not Just Batik: Why Industrial Design Is the Hidden Gem of IP in Indonesia." June 2025. https://affa.co.id/global/2025/06/23/not-just-batik-why-industrial-design-is-the-hidden-gem-of-ip-in-indonesia/
[6] Asia IP Law. "Indonesia IP Guide 2025." https://asiaiplaw.com/sector/copyright/indonesia-ip-guide-2025
[7] US Commercial Service. "Indonesia — Protecting Intellectual Property." Country Commercial Guide 2024–2025. https://www.trade.gov/country-commercial-guides/indonesia-protecting-intellectual-property
[8] US Trade Representative (USTR). "2025 Special 301 Report on Intellectual Property Protection and Enforcement." April 2025. https://ustr.gov/about/policy-offices/press-office/press-releases/2025/april/ustr-releases-2025-special-301-report-intellectual-property-protection-and-enforcement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