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유로바로미터 562: 문화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인식
최종 수정일: 8월 21일
「스페셜 유로바로미터 562: 문화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인식(Special Eurobarometer 562: Europeans' Attitudes Towards Culture)」 보고서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European Commission)의 유로바로미터 포털에서 공개하고 있다. 현장조사는 2025년 2월부터 3월까지 EU 27개 회원국에서 실시됐다.
비교 데이터의 가치
유로바로미터 562가 보여주는 한 가지 시사점은 문화에 대한 대중의 인식을 장기간 추적하는 연구가 정책 자료로서 지니는 가치다. EU는 2007년부터 비교 가능한 설문조사를 이어 와 약 20년 동안 대중의 인식이 어떻게 변했는지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동남아시아에는 이에 상응하는 역내 데이터 기반이 아직 충분하지 않다. 이는 아세안(ASEAN) 문화 정책을 발전시킬 기회이기도 하다.
이 조사의 배경과 목적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유로바로미터 문화 조사는 2007년 EU 최초의 종합 문화 의제와 함께 시작됐다. 이후 2013년, 2017년, 2019년에 조사를 반복하며 유럽인의 인식 변화를 비교할 자료를 축적했다. 2025년 조사는 역대 가장 큰 규모로, EU 교육문화총국(DG EAC)이 향후 도입할 '유럽 문화 나침반(Culture Compass for Europe)'의 시민 근거 자료를 마련하기 위해 의뢰했다. 문화 나침반은 지역 결속과 무역, AI 규제, 외교 등 EU 정책 전반에 문화를 반영하는 포괄적 정책 틀이다. 조사 결과는 '크리에이티브 유럽(Creative Europe)'의 예산 배분과 EU 문화 외교의 우선순위 설정에 활용되고, 회원국의 문화 전략을 비교하는 기준도 제공한다. 이 모델의 특징은 조사 주관 기관과 활용 목적이 명확하고 장기적인 조사를 염두에 두고 설계됐다는 점이다. 이 같은 제도적 기반은 조사 결과가 EU 정책 결정에 활용되는 힘이 된다. 아세안에 비슷한 역내 조사 체계가 없다는 사실은 데이터뿐 아니라 정책 설계에 필요한 비교 근거도 부족하다는 뜻이다.

예술가 처우의 현실
이번 보고서에서 특히 주목할 대목은 예술가의 보수에 관한 인식이다. 자국 예술가가 작업에 대해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는다고 답한 유럽인은 51%에 그쳤다. 키프로스는 23%, 라트비아는 29%, 룩셈부르크는 31%였다.
더욱 중요한 점은 문화예술계 종사자이거나 종사자를 개인적으로 아는 등 현장에 가까운 사람일수록 보수가 공정하다는 데 동의하지 않는 경향을 보였다는 것이다. 이른바 '근접성 효과(proximity effect)'는 만족보다 회의적인 인식으로 나타났다.
이 결과는 아세안 창조경제에도 중요한 시사점을 준다. 역내 정책 논의는 주로 성장 지표와 플랫폼 기회, 수출 잠재력에 초점을 맞춰 왔지만, 그 가치를 만드는 예술가와 현장 종사자의 노동 조건은 상대적으로 충분히 다뤄지지 않았다. 유럽의 통계는 이러한 문제가 특정한 발전 단계에만 나타나는 현상이 아니라, 소득 수준과 관계없이 문화경제의 운영 방식에서 발생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따라서 아세안의 창조산업 정책에서도 예술가의 노동권과 복지를 독립적인 정책 과제로 다룰 필요가 있다.
문화 접근성의 지역 격차
문화 활동 참여에 대한 전반적으로 긍정적인 평가와 달리 지역 간 접근성 격차는 여전히 남아 있었다. 유럽인의 과반수인 52%는 자국의 모든 지역 주민이 문화 활동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다는 데 동의하지 않았다. '크리에이티브 유럽' 프로그램과 인프라 투자, 수십 년에 걸친 지역 결속 정책을 추진한 EU에서도 문화 접근성의 지역 격차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로 인식됐다.
가장 많이 꼽힌 장벽은 시간 부족(45%), 입장료 부담(38%), 문화시설까지의 물리적 거리(34%)였다. 이는 취향의 차이라기보다 구조적인 장벽이다.
문화 인프라가 수도와 주요 대도시에 더 집중된 동남아시아에서 이 결과는 유용한 비교 근거가 된다. 방콕과 자카르타, 마닐라, 쿠알라룸푸르 등에서 나타나는 중앙집중 문제는 형평성에만 그치지 않는다. 지역 창의 생태계의 지속가능성과 지역 정체성, 문화 투자에 따른 사회적 편익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친다.
인공지능(AI)과 문화: 대중의 인식
조사에서 정책적으로 주목할 대목은 인공지능(AI)에 관한 인식이다. 유럽인의 81%는 AI 생성물보다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답했고, 이 가운데 54%는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응답했다. 또 73%는 생성형 AI가 예술가와 창작자의 고용이나 소득을 위협할 수 있다고 우려했다. 다만 AI 생성물과 사람이 만든 작품을 확실히 구별할 수 있다고 답한 비율은 절반에 못 미치는 48%였다. 사람이 만든 콘텐츠를 선호하면서도 실제 결과물을 구별하는 데 어려움을 겪는다는 점은 AI를 둘러싼 기대와 우려를 함께 해석할 필요가 있음을 보여준다.
아세안의 AI·문화산업 정책은 아직 투자와 인프라, 기회를 중심으로 논의되고 있다. 그러나 이번 수치는 대중의 인식이 공식 정책 논의보다 앞서 형성되고 있음을 시사한다. 웹툰과 독립영화, 공연, 음악, 디지털 콘텐츠를 대규모로 소비하는 동남아시아 관객은 이미 AI 생성물을 폭넓게 접하고 있다. 역내 문화 정책은 창작 노동과 저작물의 출처 표시, 인간 창작의 가치를 둘러싼 우려에 얼마나 선제적으로 대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유럽의 데이터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인간 중심의 AI 접근법이 소수 전문가만의 견해가 아님을 보여준다. 서로 다른 국가와 문화적 배경을 아우르는 대중의 폭넓은 지지를 받고 있다.
모두를 위한 공공재, 문화 교류
보고서는 문화 교류에 대한 높은 지지를 재확인하며 마무리한다. 유럽인의 87%는 문화 교류가 EU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답했다. 같은 비율의 응답자는 문화 교류가 국제적으로 이해와 관용을 높일 수 있다고 봤다. 두 비율 모두 이전 조사보다 상승했다.
이 결과는 아세안이 '사람 중심의 통합' 의제에서 강조해 온 문화 교류의 방향과도 맞닿아 있다. 문화 교류와 예술가 이동, 공동 제작, 유산 공유 사업은 시민의 지지를 받는 정책 수단으로 꾸준히 거론돼 왔다. 유럽 조사 결과는 그동안 원칙을 중심으로 제시돼 온 아세안의 문화 협력 논의에 참고할 만한 실증 자료를 제공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