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셜 유로바로미터(Special Eurobarometer) 562: 문화에 대한 유럽 시민들의 인식
- 5월 11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5월 11일
본 보고서 스페셜 유로바미터(Special Eurobarometer) 562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의 유로바로미터* 포털에 공개되어 있다. 해당 조사는 2025년 2월부터 3월까지 유럽연합(EU) 27개 회원국 전역에서 실시되었다.
비교 데이터에 관하여(A Note on Comparative Data)
본 보고서가 함의적으로 보여주는 주요 시사점 중 하나는 문화 분야에 대한 장기적·지속적 공공 인식 조사의 가치이다. 유럽연합은 2007년부터 비교 가능한 형태의 조사를 꾸준히 축적해왔고, 그 결과 약 20년에 걸친 인식 변화의 흐름을 분석할 수 있게 됐다. 반면 동남아시아에서는 이에 상응하는 지역 단위 문화 데이터 인프라가 아직 충분히 구축되지 않은 상황이다. 그러나 이는 한편으로 아세안(ASEAN) 틀 안에서 문화정책 발전의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기도 하다.
해당 조사가 어떠한 배경 속에서 기획되었고, 무엇을 목표로 하는지 이해할 필요가 있다. 유로바로미터 문화 분야 조사는 유럽연합이 최초의 포괄적 문화 아젠다를 추진한 2007년에 시작됐으며, 이후 2013년, 2017년, 2019년에 걸쳐 비정기적으로 이어져 왔다. 각 조사는 유럽 시민들의 문화 인식이 시간에 따라 어떻게 변화하는지 비교·추적할 수 있는 자료가 되었다.
2025년 조사는 현재까지 가장 폭넓은 규모로 실시되었으며, '유럽 문화 나침반(Culture Compass for Europe)' 수립을 위한 시민 기반 근거 자료 확보를 목적으로 유럽연합 교육·청년·스포츠·문화 총국(DG EAC)*이 의뢰하여 추진되었다.
유럽 문화 나침반은 문화 정책을 단일 분야에 한정하지 않고, 유럽연합의 다양한 정책 분야 전반과 연결하는 포괄적 정책 프레임워크로 기능할 예정이다. 여기에는 지역 결속 및 무역 정책은 물론, 인공지능 규제와 외교 정책까지 포함된다.
실무적 측면에서 이번 조사 데이터는 크리에이티브 유럽(Creative Europe) 프로그램의 예산 배분, 그리고 유럽연합의 문화외교 우선순위를 설정할 때 활용될 것이다. 또한 회원국들이 자국 문화전략을 수립·평가할 때 참고할 수 있는 비교 기준 역할도 제공한다.
이 사례가 시사적인 이유는 단순히 조사가 수행되었다는 데 있지 않다. 애초에 정책에 활용 가능한 근거를 생산하도록 설계되었다는 점이 핵심이다. 명확한 주관 기관(institutional home)이 존재했고, 조사 결과가 활용될 구체적 정책 목적(use case)이 있었으며, 장기적·연속적으로 데이터를 축적하려는 방향성 또한 갖추고 있었다.
이와 같은 공공적 정당성과 정책 활용성의 결합이 브뤼셀에서 해당 조사 결과에 무게를 부여하는 요소이며, 동시에 아세안 차원에서 이에 상응하는 지역 메커니즘의 부재가 단순한 조사 방법론적 한계를 넘어, 실제 정책적 공백이라는 사실을 보여준다.
*유럽연합 교육·청년·스포츠·문화 총국: Directorate-General for Education, Youth, Sport and Culture, DG EAC

예술가 보상 문제(The Artist Remuneration Problem)
이번 보고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발견 중 하나는 예술가의 보상 방식에 관한 인식이다. 자국 내 예술가들이 공정하고 적절한 보상을 받고 있다고 응답한 유럽 시민은 전체의 51%에 불과했다. 국가별로 분석할 경우 키프로스는 이 수치가 23%까지 떨어지며, 라트비아는 29%, 룩셈부르크는 31%에 불과하다.
특히 주목할 점은 문화예술 분야와 가까운 위치에 있는 사람들, 즉 실제 문화예술 종사자이거나 해당 분야 종사자를 개인적으로 알고 있는 사람들이 오히려 보상 구조의 공정성을 낮게 평가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문화예술 현장과의 ‘근접성 효과(proximity effect)’가 만족이 아니라 회의의 방향으로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이는 아세안 창조경제 전반에서도 공통적으로 발견되는 구조적 문제로 이해할 수 있다. 지금까지 지역 차원의 담론은 주로 산업 성장 지표, 플랫폼 기반 기회, 콘텐츠 수출 잠재력 중심으로 형성되어 왔지만, 이러한 가치를 생산하는 예술가와 문화예술 종사자들의 노동 조건에 대해서는 상대적으로 논의가 부족했다.
유럽의 조사 결과는 이러한 간극이 특정 국가의 경제 발전 수준에만 국한된 문제가 아니라, 문화경제가 어떠한 방식으로 운영·관리되는가와 더 깊은 관련이 있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아세안의 변화하는 창조산업 정책 프레임워크에서도 예술가 복지와 노동 환경은 보다 일관되게 정책 우선순위로 다루어질 필요가 있다.
문화 접근성의 지역 격차(Geographic Equity in Access)
문화 참여에 대한 전반적 긍정적 인식에도 불구하고, 이번 조사에서 여전히 해결되지 않은 지속적인 균열도 확인된다. 유럽연합 시민 중 다수(52%)는 자국 내 지역에 관계없이 모든 시민이 문화 활동에 동등하게 접근할 수 있는 기회를 갖고 있지 않다고 대답했다. 문화 접근성의 지역 간 불평등은 크리에이티브 유럽 프로그램, 문화 인프라 투자, 그리고 수십 년간의 지역 결속 정책을 운영해온 유럽연합에서도 완전히 해소되지 못한 과제로 남아있다는 뜻이다.
가장 많이 언급된 문화 참여 장벽은 시간 부족(45%), 입장료 부담(38%), 그리고 문화시설과의 물리적 거리(34%)였다. 이는 단순한 개인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구조적 제약에 가깝다.
문화 인프라가 수도권과 대도시에 집중되는 경향이 훨씬 강한 동남아시아 맥락에서 보면, 이러한 결과는 중요한 비교 기준을 제공한다. 방콕, 자카르타, 마닐라, 쿠알라룸푸르 등을 중심으로 나타나는 문화 인프라 집중 현상은 단순한 형평성의 문제가 아니다. 지역 창조생태계의 지속가능성, 지역 정체성, 그리고 문화투자의 사회적 환원 효과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는 사안인 것이다.
인공지능(AI)과 문화: 대중의 인식(AI and Culture: The Public Position)
이번 조사에서 가장 직접적으로 정책과 연결되는 부분은 바로 AI에 관한 항목이다. 조사 결과는 매우 명확하다. 전체 응답자의 81%는 AI 생성 콘텐츠보다 인간이 만든 콘텐츠를 선호한다고 응답했다. 이는 단순한 과반 수준이 아니라, 응답자의 54%가 “전적으로 동의한다”고 강한 경향성을 보였다.
또한 73%는 생성형 AI가 예술가와 창작자의 고용 및 수입에 위협이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하지만 동시에 응답자의 절반 이하인 48%만이 AI 생성물과 인간 창작물을 안정적으로 구분할 수 있다고 답했다. 이 격차는 현재 AI 담론에서 나타나는 낙관론과 위기론 모두 복잡하게 만드는 요소이다.
아세안의 경우, 아직 AI와 문화산업 정책이 주로 투자, 기술 인프라, 산업 기회 중심의 프레임에 머무르는 경우가 많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번 조사 결과는 대중의 인식이 공식 정책 논의보다 한 발 앞서 움직이고 있음을 보여준다.
웹툰, 독립영화, 공연예술, 음악, 디지털 콘텐츠 등을 대규모로 소비하고 있는 동남아시아의 시민들은 이미 AI 생성 콘텐츠를 일상적으로 접하고 있다. 따라서 앞으로 지역 문화정책 체계에서 중요한 과제는 거버넌스 제도 체계가 창작 노동, 저작권 및 귀속 문제, 그리고 인간 창작의 가치에 대한 우려에 얼마나 선제적으로 대응할 것인지가 될 것이다.
유럽의 조사 결과는 문화예술 분야에서 인간 중심적 AI 접근은 일부 전문가의 견해가 아닌, 다양한 국가적 맥락을 아우르는 폭넓은 공공 지지를 받고 있는 관점이라는 중요한 시사점을 가리킨다.
공동의 가치로서의 문화교류(Cultural Exchange as Shared Value)
이번 조사는 문화교류가 공공재로서 갖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분명하게 확인하면서 마무리된다. 전체 응답자의 87%는 문화교류가 유럽연합 내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야 한다고 응답했으며, 동일한 비율의 응답자가 문화교류가 국제사회에서 상호 이해와 관용을 증진할 수 있다고 답했다. 두 수치 모두 이전 조사 대비 상승한 결과이다.
이는 아세안이 지속적으로 강조해온 ‘사람 중심 통합(people-centred integration)’ 기조와도 맞닿아 있다. 문화교류, 예술가 이동성(artist mobility), 공동제작, 공동 문화유산 사업은 시민 대상 조사에서 꾸준히 높은 지지를 받아온 정책 수단들이다. 주로 가치와 원칙에 기반한 문화교류 필요성 담론에 데이터 기반의 정책 논의로 확장할 수 있는 실증적 근거를 제공하고 있다는 점에서 의미가 깊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