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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아세안 문화혁신 포럼

사마핍 타르, '사마핍'-평등

핍 타르

그래피티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레터링이나 글자체를 구현하는 것도 좋고 언제나 존중하는 부분이지만 저는 조금은 다른 그 무언가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그 다름이란 문화적 배경과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발표 영상




발표 내용


안녕하세요, 제 이름은 핍타르입니다. 활동명이자 사람들이 저를 알고 있는 이름이지요. 단순히 핍이란 별명으로 불리기도 합니다. 제 본명은 사마핍 타르로, 사마핍은 캄보디아어로 평등을 뜻합니다. 사실 저는 혼혈로 어머니는 캄보디아인이시고, 아버지는 뉴질랜드인이십니다. 제가 지금까지 창작했던 스트리트 아트나 그래피티 아트의 대부분은 캄보디아와 뉴질랜드 두 나라의 영향을 강하게 받았습니다. 저는 두 나라 모두의 문화적 요소를 제 작품에 불어넣고 있습니다.

제가 보다 전문적인 아티스트로 활동한 곳은 뉴질랜드 오클랜드입니다. 그곳에서 실험적인 작품들도 많이 시도했었고 다른 무언가를 만들어내고자 여러 가지 소재를 결합해 보기도 하였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 시드니에서 성장하면서 그곳의 힙합 문화, 특히 그래피티 문화에 강한 영향을 받았습니다. 저는 시드니의 글리브에서 고등학교를 다녔는데 저를 비롯 당시 많은 아이들이 힙합이나 그래피티 문화에 심취해 있었습니다.

바로 그때, 그곳이 저에게 진정한 영향을 준 것이죠, 그때가 90년대였습니다. 다시 뉴질랜드 오클랜드 이야기를 이어가자면 제가 아티스트로 제 일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된 시점은 친구와 함께 작업을 하고, 벽화를 그린 후 전시회에 작품을 내놓았을 때 사람들이 제 작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부터였습니다. 그 때가 2000년대 초반이라 기억합니다.

정식으로 아트쇼에 참여하기 시작한 시기는 2015년 무렵이었는데 그때 작품을 내놓을 때마다 판매량이 증가하는 것을 보고 사람들이 정말 제 작업을 좋아하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덕분에 아티스트라는 직업을 심각하게 받아들이게 되었고요. 그 무렵 저는 기존의 그래피티나 스트리트 아트에 제 스타일을 결합하게 됩니다. 물론 그래피티 문화에 자주 등장하는 레터링이나 글자체를 구현하는 것도 좋고 언제나 존중하는 부분이지만 저는 조금은 다른 그 무언가를 해 보고 싶었습니다. 저에게 그 다름이란 문화적 배경과 연관된 것이었습니다.

캄보디아인 어머니와 뉴질랜드인 아버지가 계셨으니까요.사실 뉴질랜드에서 자랐기 때문에 캄보디아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습니다. 뉴질랜드와 호주를 오가며 자랐기 때문에 캄보디아 문화에 잘 노출되지 않았었지만 점차 단계적으로 알게 되었고, 특히 캄보디아 방문이 큰 도움이 되었습니다.그때가 90년대였고, 여러 여행지를 들렀다 앙코르와트가 있는 시엠레아프에 가게 되었는데 그 계기로 아버지 문화와 어머니 문화의 결합에 대한 아이디어를 구상하게 되었습니다. 뉴질랜드로 돌아가 아이디어를 실행에 옮겼고, 그렇게 주목을 받기 시작했습니다.

그 후 2009년 말로 넘어가자면 저는 그때 태국에 있으면서 캄보디아를 오가게 되었는데 90년대부터 알고 지내던 태국의 예술 분야 친구 몇몇이 여기저기에서 열리는 아트 행사에 저를 참여시켜 주었습니다. 그때부터 활동하던 뉴질랜드를 벗어나 다시 태국과 캄보디아를 가게 되었죠. 여러 아트 행사에 제 작품을 선보이는 것도 좋았지만 캄보디아 활동에 좀 더 중점을 두고 싶었습니다. 캄보디아는 어머니의 고향이자 현재도 살고 계시는 곳이고 제 가족의 반이 그곳에 있기 때문이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