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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조연설] 2020 한-아세안 문화혁신포럼

리티 판

아세안은 다양한 혁신 가능성과 역량을 갖춘 큰 시장입니다. 또한 여러 아시아 국가의 감수성이 공존하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아세안은 아주 강력한 연합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여전히 문화 지원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발표 영상



 

발표 내용


캄보디아는 전쟁과 집단학살의 비극을 경험한 나라입니다. 수많은 시민이 사망하고 문화와 정체성이 파괴되었으며,
인간의 존엄성도 크게 훼손되었습니다. 집단학살은 지극히 잔혹하고 폭력적인 충돌이었습니다.
크메르루주 정권의 몰락 이후, 캄보디아의 사회경제적 재건이 시급했습니다. 또한 작가나 배우 등 예술인 대부분이 사망하였기 때문에 문화적 정체성이 상실되었습니다.
회복하기 위해 우리는 조금씩 노력하며 투쟁했습니다. 지금은 세상을 떠난 제 선배 예술인들은 굉장히 용감했습니다. 영화계에서도 활동하던 배우나 감독 대부분이 희생되었기 때문에 차세대 예술인의 양성이 절실했습니다.

교육은 국가의 재건에 필수적인 요소이며 우리의 기억과 추억들을 잊지 않도록 해줍니다.
크메르루주 정권 하에서는 영화, 도서 등 창작물이 대부분 훼손되었습니다.
따라서 저는 보파나 센터(1)를 통해 오래된 아날로그 영상의 디지털화 프로젝트를 진행했습니다.
과거 캄보디아의 고전영화나 크메르루주 집권 중 제작된 영상 외에도 캄보디아의 역사를 다룬 전 세계의 모든 음성 및 영상물들을 전부 디지털화 하여 젊은이들이 조국의 역사에 대해 배울 수 있도록 하였습니다.
캄보디아의 미래 세대가 집단학살을 극복하고 전진하려면 조국의 역사와 전통을 알아야만 합니다.
이러한 문화적 기반을 발판 삼아 미래를 향해 도약할 수 있습니다.

영화를 제작할 때 저는 제 자신보다는 국가에 집중하는 편입니다.
제가 가진 최소한의 자원으로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입니다.
물론 캄보디아의 역사를 생각하며 많은 영화를 제작하였습니다.
그 누구도 우리 캄보디아인을 대신하여 우리의 역사에 대해 말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역사, 경제, 사회에 대한 외국인의 시선은 내국인의 시선과는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따라서 저는 캄보디아의 역사에 몰두하기로 다짐했습니다.
저는 미래 세대 교육이라는 과업에 사명감을 갖고 임하고 있습니다.
윗 세대가 부탁하고 떠난 과업을 기쁘고 감사한 마음으로 받아들여
이미지를 창작할 수 있는 젊은이들을 키워내고 싶습니다.
새롭게 도래하는 시대는 이미지, 시청각, 멀티미디어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자국의 언어, 감수성 그리고 관점을 담은 이미지를 창작하지 않고는 생존할 수 없습니다.
경제적 여유가 없는데도 영화를 만드는 이유에 대한 질문을 자주 받습니다.
비슷한 돈이면 영화 제작보다는 학교 설립이 낫지 않느냐는 의문입니다.
하지만 우리의 영화, 우리의 이미지를 만드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저는 가진 것을 최대한 활용하여 현실을 담아 내려고 합니다.
음성 녹음을 처음 해보는 사람들과 함께 작업하기도 했고
그들을 교육하는 동시에 그들과 함께 창작할 수 있었습니다.
젊은이들과 함께 창작 활동을 할 때에는
현실의 어려움 속에서도 상상력을 꽃피워야 합니다.


<잃어버린 사진 L’IMAGE MANQUANTE (The Missing Picture)>(2013)

지금도 코로나19 위기와 세계적 경제 불황과 같은 어려움을 마주하고 있기에
우리는 대단히 창의적이고 독창적으로 사고해야 합니다.
대규모 예산을 들여 영화를 제작할 수단은 제게 없습니다.
작은 점토 인형들 밖에 없다면, 이를 활용해 영화를 찍어야 합니다.
제 작품 <잃어버린 사진>은 점토인형을 활용해 저예산으로 제작하였지만
오스카상 후보에 오르고 칸영화제에서 수상까지 하였습니다. <라이스 피플>이라는 픽션 영화도 비슷합니다.
이 작품은 영화 제작에 처음 참여해보는 사람들과 함께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만들 때 저는 사람들의 상상력과 그 힘을 가장 중요시합니다. 저 또한 힘을 받기 때문입니다. 타인으로부터 힘을 받아 제 삶의 원동력으로 삼을 수 있습니다. 이렇게 영화는 공동의 프로젝트라는 점이 마음에 듭니다.


<라이스 피플 Rice People>(1994)

아세안은 다양한 혁신 가능성과 역량을 갖춘 큰 시장입니다. 또한 여러 아시아 국가의 감수성이 공존하는 공동체입니다. 따라서 아세안은 아주 강력한 연합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여전히 한 부분이 아쉽습니다.
문화 지원을 위한 적극적 노력이 충분하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어떻게 말씀드려야 할지 잘 모르겠습니다만 모든 아세안 국가들은 문화 진흥을 통해 더욱 발전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문화 발전 없이는 경제 발전도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캄보디아와 같이 작은 나라는 상황이 더 열악합니다. 인구가 고작 1500만 명으로 시장이 형성되기 어렵지만 우리에겐 능력과 가능성이 있습니다. 또한 아름다운 자연 환경과 기후 조건 등 많은 매력을 갖추었습니다. 하지만 현재로서는 타국과 공동 제작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캄보디아 영화의 미래는 공동 제작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국가의 정체성을 유지하면서도 타국과 협업하는 겁니다.
아세안 국가들은 창의적 사고를 하고 공동체 의식을 가져야 합니다. 교류와 협업을 확대하며 공동의 길을 걸어야 합니다. 또한 우리의 문화적 역량을 최대한 활용할 수 있길 기대합니다. 전 세계적으로 박물관 건립에 막대한 투자가 이루어지는 이유는 문화가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해마다 프랑스, 이탈리아, 뉴욕을 방문하는 중요한 이유는 멋진 박물관과 영화관이 있고 전통 예술이 살아 있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러한 공유의 정신을 믿습니다. 
이를 바탕으로 문화 진흥을 위한 장기적이고 지속 가능한 노력이 이루어지길 기대합니다.

오늘날 저의 가장 중요한 과업은 젊은이들을 교육하는 것입니다. 앞서 말씀드렸듯, 캄보디아는 학살 및 전쟁으로 인해 많은 인재를 잃었습니다. 영화 예술은 많은 사람들의 참여를 필요로 합니다. 시나리오 작가, 배우, 감독, 사운드 엔지니어, 카메라맨 등 많은 인력이 필요합니다. 영화는 하나의 중요한 산업입니다.
영화는 단순히 영상을 판매하고 수출하는 산업에 그치지 않고 문화정체성, 삶의 방식, 세계를 이해하는 관점을 표현하는 수단입니다. 저는 문화적 다양성을 지지하며 세계의 획일화를 원하지 않습니다.
문화적 다양성은 우리의 소중한 자산입니다.

 

발표자 소개


캄보디아 출신 영화감독인 리티 판은 1964년 프놈펜에서 태어났다. 크메르루즈 정권기의 대학살과 집단적 기억에 관한 영화작품으로 리티 판은 오늘날 캄보디아의 가장 중요한 감독으로 인정받고 있다. 1975~1979년 사이 대학살 기간 동안 가족이 사망하고 그는 태국으로 탈출해, 프랑스로 건너갔다. 이후 프랑스 국립영화학교 페미스(FEMIS)에서 수학했으며, 1989년 그의 첫 다큐멘터리 작품 <사이트 2 Site 2>를 완성했다.  이후 그는 크메르루즈 정권하의 처참했던 유년시절의 경험을 다수의 영화로 기록해왔다.
그의 대표작으로는 <S21, 크메르루즈 살인기계 S21, la machine de mort khmère rouge(The Khmer Rough Killing Machine)>(2003), <잃어버린 사진 L'image manquante (The Missing Picture)>(2013) 등이 있으며, 크메르루즈 정권하의 삶과 그 잔재가 큰 테마를 이루고 있다.
2013년 리티 판은 자국의 역사를 디오라마 방식으로 재현한 <잃어버린 사진>으로 칸 영화제에서 '주목할만한 시선 상'을 수상하며 캄보디아의 대표적인 감독으로 세계적인 주목을 받았다. 2013년에는 이름과 얼굴 없이 자국을 탈출해 프랑스에서 영화를 공부하며 스스로의 이미지를 찾아가기 까지의 여정을 다룬 자서전 『엘리미네이션L'ÉLIMINATION』을 출간했다. 최근에는 <피폭의 연대 Irradiated, Irradiés>(2020)로 제70회 베를린국제영화제 베를리날레 다큐멘터리상을 수상했으며, <에브리띵 윌 비 오케이 Everything Will Be Ok>(2022)로 제72회 베를린국제영화제 은곰상과 예술공헌상을 수상했다.
작가로서 뛰어난 역량을 보여준 그는 영화제작 뿐만 아니라 시청각자료의 보존과 다음세대를 위한 영화 교육을 위해 힘썼다. 2006년 그는 이에우 판나카르 감독과 함께 보파나 센터를 설립하여, 사라져가는 시청각자료를 수집하고 캄보디아의 젊은 세대를 위해 공유하고 그들이 스스로 캄보디아의 이미지를 제작할 수 있도록 했다. 2022년 리티 판은 아시아영화아카데미(Asian Film Academy, AFA)의 교장으로 선정되었다.

 

보파나 센터


(1) 보파나(Bophana)는 25살에 크메르루즈 정권에 의해 처형된 여성이 이름이다. 그녀의 시체는 1977년 3월 18일 청아익의 거대한 공동묘지(현재 프놈펜 청아익 대학살 센터)에 던져졌으며, 같은 날 그녀의 남편 역시 살해당했다. 죽음에 이르기 전 5개월 동안의 고문을 받으며, 보파나는 자신의 가족과 삶에 대해 수 천 페이지의 비망록을 남겼다. 리티 판 감독은 1996년 <보파나: 캄보디안 비극 Bophana, une tragédie cambodgienne>이라는 텔레비전 다큐드라마를 제작했다.
2006년 12월 4일 캄보디아 프놈펜에 개관한 "보파나 센터(Bophana|Audiovisual Resource Center)"는 영화감독인 리티 판과 이에우 판나카르가 설립했으며, 현재까지 약 700시간이 넘는 19세기 뤼미에르의 영화, 다큐멘터리, 방송 녹화자료, 1960년대 라디오 방송 녹음, 크메르 루주의 프로파간다 영화, 노로돔 시하누크에 관한 기록영상과 동시대 캄보디아 영화감독의 극영화까지 캄보디아의 시청각 문화유산을 관리하고 보존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설립초기 부터 보파나 센터는 캄보디아의 젊은이들에게 자국의 역사와 기억을 이미지를 통해 사유하고 스스로 생산해 낼 수 있는 능력을 키울 수 있는 다양한 교육과정과 지원을 해오고 있다. 보파나 센터에서 실행하고 있는 중요 프로젝트로는 크메르루즈 기간에 살아 남은 캄보디아인들의 개인의 기억을 기록하는 <기억의 장 Acts of Memory>, 모바일 시네마 프로젝트, 영화제 운영등이 있다. 아울러 캄보디아의 시청각문화유산을 누구나 쉽게 접근 가능하도록 연구센터를 운영하여 젊은이들이 과거를 배우고, 해외의 아카이비스트 및 영화제작자등과 협업을 통한 다양한 제작과 연구 프로젝트를 진행중에 있다. (https://bophana.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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